경주 월성 축조 연대와 인신공희 사례 추가 확인
수년 전에도 월성 성벽에서 남성의 인골이 2기 발견된 적이 있다.
성벽 축조 과정에서 제물로 바친 것으로 추정했는데, 논란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성을 비롯 남성, 짐승뼈까지 한 지점에서 나온 모양이다. 문화재연구소에서는 인신공희(人身供犧)로 추정하는 듯하다. 이전의 사례에서 사례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게 확정짓기에는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점들이 많다. 일일이 여기서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아직 그 추정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보류한다.
인민을 동원하여 토목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규정에 어긋난 행동을 하거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본보기로 즉결 처형하여 성벽 속에 묻어버리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개인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으며, 그 가족에 딸린 가축이 포함될 수도 있지 않을까? 중국의 경우에도 성벽 축조과정에서 이런 즉결 처형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런 조치, 즉 즉결 처단하여 성벽 속에 묻으면서 규정대로 제대로 축조하여 튼튼하게 버티기를 바라는 약간의 의례를 행하는 것. 이것을 인신공희의 범주에 넣는다면, 그 정도는 수긍할 수 있겠다.
일단 문화재청 보도자료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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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성, 월성의 축조 연대와 인신공희 사례 추가 확인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는 2017년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인신공희(人身供犧) 사례로 인골 2구가 확인된 월성 서성벽에 대한 추가 발굴 결과, ▲ 인신공희(人身供犧)의 성인 여성 인골 1구를 추가로 발굴했고, ▲ 신라 왕성인 월성의 축조 연대와 축성 방식을 최초로 밝혀냈다. 월성 서성벽의 인신공희는 국내 유일의 성벽 의례이며, 현재까지 신라가 최초로 축조한 왕성 월성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yvYCBA2aJFa8hIdIpur82Q
* 인신공희: 사람을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낸 의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7년 인신공희 긴급 보고 이후, 월성 서성벽 구간을 정밀 조사하여, 국내에서 최초로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사람, 동물 등을 제물로 바친 정황을 확인하였다. 또한, 서성벽의 축조 공정을 세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월성 성벽의 토목 기술과 축조 시기를 살펴보기 위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로 월성 기초부 공사를 끝내고 성벽을 거대하게 쌓아 올리기 전, 성벽과 문지가 견고하게 축조되길 바라는 인신공희가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2017년에 보고된 50대 남녀 인골에 더해 성인 여성 인골과 동물뼈 등을 추가로 확인했다. 이번에 확인된 여성 인골은 이전과 달리 곡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 팔찌를 착용하였고, 키가 약 135cm 전후로 체격이 왜소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물뼈는 말, 소 등 대형 포유류로 추정되며, 늑골 부위 위주로 선별하여 제물로 바쳐졌다.
인신공희 지점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1985년과 1990년 시굴·발굴조사에서 출처 불명의 인골 20구 이상이 일괄적으로 확인된 바 있는데, 이번에 밝혀진 월성의 축성 작업과 비교한 결과, 이들 인골 또한 성벽 축조 과정과 관련하여 묻힌 것으로 밝혀졌다.
월성 서성벽 조사는 축성 시기, 토목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중요성이 크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는 월성이 파사왕 22년(101년)에 축조된 것으로 등장하지만, 이런 축성 기록은 실제 축조 연대보다 많이 앞당겨진 시기로 여겨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서성벽 발굴조사를 통해 월성은 문헌 기록과 약 250년 차이 나는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세기 초에 이르러 완공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월성 서성벽의 축조 연대는 출토된 유물의 전수 조사와 40여 점에 가까운 가속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 연대 분석에 기반해 이루어졌고, 양자 간의 정합성을 최대한 맞추어 자료의 객관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 전수 조사: 발굴조사 유적에서 출토된 모든 유물들을 수습하고 기록함
* AMS 연대 분석: 목재, 유기물질 등의 탄소를 측정하여 과거 연대를 검출하는 방법
월성은 신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성으로 알려졌지만, 그 축조 수준은 토목공학적으로 다양한 축성 기술이 집약되어있다.
먼저, 일정 간격으로 나무 말목을 박은 지정(地釘)공법과 목재, 식물류를 층층이 깐 부엽(敷葉)공법 등 기초부 공사를 통해 월성 지형의 연약한 지반을 보강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성벽 몸체를 만드는 체성부 공사에서는 볏짚·점토 덩어리·건물 벽체 등을 다양한 성벽 재료로 사용하여 높고 거대하게 만드는 토목 기술이 확인되었다. 월성 성벽은 너비 약 40m, 높이 10m 이상으로 추정되어, 신라인들의 뛰어난 토목 기술과 당시 왕성의 웅장함을 그려볼 수 있다.
* 지정공법·부엽공법: 성벽 기초부를 견고하게 다져 올리는 작업으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주로 사용됨. 신라에서는 토성에서 사용된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
월성 서성벽 조사 성과는 7일 오후 4시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유튜브 현장설명회로 공개된 후, 다음 날인 8일에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학술적 의미를 토론할 예정이다. 전문가 토론회는 ▲ 1부: 월성 서성벽 구조, 축조 연대, 그리고 인신공희, ▲ 2부: 신라권역과 백제, 가야권역 토성 비교, 무덤 자료 및 문헌적 비교 검토 순서로 진행되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유튜브에서도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왕성 월성의 궁궐 배치와 성벽 축조 재료의 자연과학적 분석에 대한 조사,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도 적극 행정과 정부 혁신의 하나로 월성 발굴조사 성과를 국민에게 꾸준히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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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는 첨부파일.
관련된 언론보도
< 신라 월성서 또 인신공양 흔적…4세기 '제물 인골' 추가 발견 > (연합, 21. 9. 7.)
< 30여년전 경주 월성서 나온 인골 20여구 미스터리 풀리나 > (연합, 21. 9. 7)
< 인신공희 추가 발굴, 대중통제 목적…월성 축조 시작은 4세기 전·중엽 > (경향, 21. 9. 7)
< 삼국사기보다 250년 늦은 월성 축조 시기 > (연합,21. 9. 8)
< 성벽 쌓으며 사람을 제물로... > (MBC, 21.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