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구산리 삼층석탑
거의 20년 전에,
한겨울 눈이 채 녹지 않았을 때 이곳을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울진에 가서 봉평비를 보고, 하루를 묵었던가... 그런 다음날에 지도상에서 구산리석탑을 보고서는 "한 번 가보자"고 길을 나섰는데.
당시에 아반테를 몰고서는,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라. 10만분의 지도책을 조수석을 차지한 사람이 봐가면서 운전했는데.
결론은, 그 때는 가보지를 못했다.
제법 험한 비포장 산길을 구비구비 돌아가던 중, 눈이 녹지 않아 빙판이 된 곳이 여러 군데 있었고. 결국 "겨울철에 만용을 부리지 말자"며 돌아섰고.
이번에 가 보고서는 "그 때 중간에 돌아오길 잘했다. 강행했더라면 위험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으나 여전히 좁은 길이고. 중간에 도로 확장공사를 하고 있는 구간이 있었지만, 두메산골 외진 곳임은 분명하다. "이런 곳에까지 절이?" 하고 생각될 만큼.
그런데 이곳을 지나 더 깊은 곳까지 마을이 있다. 인간의 생존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여기게 됨.
21년 10월 25일.
석탑 있는 곳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사진에 보이는 것은 펜션인데, 방갈로 같은 시설을 두어 채 운영하는 듯했다. 편하게 여기 차를세우고.
주인장은 주변 경치가 아주 빼어난 것을 자랑하듯이 "편하게 둘러보세요"라는 작은 팻말까지 붙여놓았더랬다. 석탑을 둘러보고나서 주인장과 눈인사를 했다.
가까이 가서 본 석탑. 몇 년 전에 주변 발굴을 하고, 깔끔하게 정비해둔 모습이었다. 조금 늦은 계절에 간 셈인데, 보름 빨라 갔다면 단풍도 그렇고, 훨씬 좋은 모습이었으리라. 감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가까이 민가가 있다가 정비된 듯.
문화재 지정이 흔치 않을 때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물 제498호. 앞으로는 문화재청에서 번호를 없애기로 했다지만, 현재까지 번호가 붙어 있으니 소개.
사실은 내가 볼 때는, 보물로 지정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아직도 민가 서너 채가 있고, 주변 논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다. 마침 내가 간 날 콤바인이 들어가서 추수를 하고 있었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 탑은 2004년에 해체수리했다고 한다. 청암사(靑岩寺)터로 전해온다는 설명도 있고.
2006년 발굴조사 때 금동불상, 중국동전, 기와 및 자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동시에 만들었음이 분명한 석등재가 모아져 있다. 8각 석등이기는 하지만, 시대는 신라보다 더 뒤로 내려올 듯하다.
가까이 있는 계곡은 아주 빼어난 풍광이다. 왕피천인데, 한국의 개천 중에서도 수질 좋기로 이름난 곳이고. 그래서 왕피천 트레킹도 인기가 있다.
마침 해질녁이라,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해서 오른쪽 바위들은 다 희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