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답사기/박물관,유물 (6) 썸네일형 리스트형 일본 국보 신라 종, 보존처리 된다 연지사 종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약탈하여 일본으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종이다. 비천상을 비롯한 문양이 있고, 특히 833년이라는 연도가 분명한 명문이 있어서, 연구자들도 종종 인용하는 종이다. 명문의 탁본은 이렇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판독은 아래와 같다. 太和七年三月日菁州蓮池寺 鐘成內節傳合入金七百十三廷 古金四百九十八廷, 加入金百十廷. 成典和上 惠門法師 ▨惠法師 上坐 則忠法師 都乃 法勝法師 鄕村主 三長及干 朱雀大㭆 作韓舍 寶淸軍師 龍年軍師 史六▨ 三忠舍知 行道舍知 成博士 安海哀大舍 哀▨大舍 節州統 皇龍寺覺明和上 菁州는 지금의 경남 진주이다. 이 종을 일본 문화재 단국이 보존처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진작 보존처러했어야 하지 않았나... 상태가 썩 좋지 못하다. (.. 울진 봉평비의 논란 글자 五 일찍이 한국목간학회가 싸이월드 클럽에 잠시 공간을 마련했을 때 적은 글을 [보존]을 위해 여기에 다시 옮김. 따라서 날자가 과거 것. (최초 작성 2011.11.18 15:19) 최근 몇 년간 봉평비에 대한 새로운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하 평어체로 개조식으로 작성함을 양해) 발견 당시에 포크레인에 떨어져나가서, 나중에 수습하여 접합시킨 1행 끝 부분에 五 자가 있느냐, 자획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냐 등등. 2011년 6월 고대사학회가 울진에서 개최한 봉평비 심포에서도 거론되어, 저는 하루 전날 비석을 보고 와서 "글자가 아니다"는 논지로 이야기한 적이 있음. 그러나 당일 함께 가서 검토하면서도 찬반 양론이 갈리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 논란은 빨리 매듭짓는 것이 낫겠다 싶어, 2011년 8월 25일, .. 증도가자(證道歌字) 논란 직지심체요절보다 더 오래된 금속활자냐, 아니면 위조품이냐. 고려시대에 목판으로 인쇄된 ['증도가'(證道歌)]는 책자로는 남아 있는 것. 그런데 여기에 "금속활자로 다시 새겨 오래 전하게 했다"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5년 전에 이 때 만든 활자라고 추정되는 활자 몇 개가 소개되면서 끊임없이 진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 마침 연합에서 관련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하여 모아서 소개하려 함. (연합, 15. 11. 23.) (연합, 15. 11. 23.) 개성 만월대 특별전 2015년 10월 14일 ~ 11월 6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남북공동발굴 개성 만월대 특별전]이 열린다. 이 전시는 개성에서는 만월대에서 출토된 실물 유물을 전시하며 열리고. 서울에서는 해방 이전의 출토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을 전시하는 한편. 3D 디지털로 복원된 유물을 전시한다. 만월대 발굴은 남북이 합의하여 2007년에 시굴조사를 한 이후. 지금까지 남북간 정치 군사적 경색기간을 거치면서도 중간에 3년 중단된 경우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계속해온 남북공동 사업이다. 보통 2개월 정도를 기간으로 작업하다가, 올해는 유례없이 6개월이라는 장기간 작업에 합의하여 지금도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 오후에 잠시 들러본 내용을 소개한다. 3D기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황남대총 특별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할 때는 가보지 못하여, 경주로 옮긴 특별전을 찾았다. 2011년 1월 11일. 서울보다는 많은 토기와 유물들이 전시실로 나왔다. 대부분의 유물이 경주박물관에 있으므로 당연한 일. 그래서, 서울 전시회보다는 경주박물관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토기만 해도 질과 양에서 어마어마하다. 왕의 관(棺) 내부. 발굴 당시의 유물 위치를 대략 복원해놓았다. 허리 쯤에 허리띠가 있고, 왼쪽 허리 부분에 큰칼이 놓여 있다. 그리고 저 끝 머리 쪽에는 금동관의 파편들이 보인다. 실제로는 이 금동관이 이마 위에 씌여진 채로 매장된 것이 아니고, 위치상 그보다 좀 아래를 덮은 모습이었으리라 추정한다. 그래서 머리에 쓰는 관(冠)이 아니라 일종의 데드마스크라는 견해도 나왔다. 그러나, 부장.. 울릉도 독도박물관 등 2012년 4월 24일. 울릉도에 온 둘쨋날. 오후에 독도를 둘러보기 전에, 독도박물관과 향토유물전시관을 둘러보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의 잘 지은 건물이 독도박물관이다. 삼성에서 지어준 것. 그리고 그 앞의 작은 건물이 향토유물전시관. 그리고 독도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 타는 곳이다. 이 사진은 케이블카 안에서 찍은 것. ▼ 독도박물관에 전시된 [신묘명각석] 1937년 바다에서 건져낸 것. 2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것밖에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1711년 삼척영장(三陟營將) 박석창이 울릉도 수토(搜土) 차 방문하여 새긴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선정부의 정책은 먼 섬에 사는 주민들을 가능하면 육지로 옮겨살게 하는 방침이었다. '수토'의 임무란 이런 일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어찌됐던 이런 기록들은 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