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5일.
영양의 석탑들을 보러 온 답사길. 현이동모전석탑까지 둘러본 뒤에 검산성(劒山城)으로 향했다.
검산성은 특이한 성이다. 흔히 산성이라 하면 삼국시대 것이거나, 아니면 조선시대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검산성은 구한말에 쌓은 것이다. 벽산(碧山) 김도현(金道鉉:1852~1914)이 의병을 일으키면서 개인 재산을 들여 마을 뒷산에 쌓은 것이다.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서는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갔으나, 좁은 시골길에서 기계는 별로 정확치 못했다. 다행히 적당한 비탈길은 감당하는 차량이라서 왠만큼 올라가보자며 차를 몰았다.
그랬더니 길이 끊어진다. 바로 이 비석 앞에서였다. 벽산 선생의 의병 활동과 순절(殉節) 기념비이다. 길을 잘못 들지 않았더라면 선뜻 지나칠 뻔한 곳에 있었다.
멀리 새로 정비해둔 성벽이 보이길래 밭길을 따라서 걷다. 콩밭 사잇길로 걸으며 바라본 검산성.
멀리 북쪽 하늘이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 이 날은 남쪽에서부터 저기압이 북향한다고 했는데, 저기쯤에서 만나기 시작한 듯.
사실은 딱히 성(城)이라고 부르기도 뭣하지만, 성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렇다. 벽산의 의병활동을 기리면서 새로 정비해둔 모습이다. 오른쪽은 개천이 흐르는 급경사라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성벽은 사진에 보이는 서쪽과 내가 사진 찍는 남쪽까지이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 입구까지 이어지는 성벽이다.
성벽 위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이렇다.
▲ 검산성에서 바라본 상청리 마을. 한가운데 벽산 김도현 생가가 있다.
벽산의 생애에 대해서는 영양군에서 소개한 내용이 비교적 정확하고 자세하다. 경북 안동 지방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연구가 꽤 이루어져 있고, 안동에는 '안동독립운동기념관'도 지어져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도현의 유품도 이곳에 진열되어 있다.
<김도현과 검산성>(영양군 홈페이지 문화재 설명) ☜ 참고하시라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이렇다. 영양은 정말 산골이다. 이곳 청기면 상청리도 농토가 좁은 산골 마을이다.
다시 성 밖으로 나와서 바깥 성벽을 찍었다. 높이 2m도 채 안된다.
벽산 선생은 일제 강점 뒤인 1914년에 동해 바다로 걸어들어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생의 활동을 살펴 알고, 그 신념을 접하게 되면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당시에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이렇게 표출된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 시대상황에 어두웠다고 할까... 이런 규모로 성을 쌓아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대비한다는 발상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느낌.
그런데 실제 의병들은 오래된 성에 의지하기도 했다. 충청도 홍성에서도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가 있었고. 전라도 금성산성은 동학군이 일본군에게 대량 살륙당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에 항거하는 마음이야 높이 사야 하는 것이지만, 그 방법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었던 것이다.
검산성에서 내려와 벽산 생가를 찾았으나, 마침 대문부터 파란색 보호비닐을 덮은 채 수리중. 이번 영양 답사는 왜 이리 보수공사하는 곳이 많은지...
영양은 고추 농사로 유명한 곳이라, 이리저리 다니다보면 온통 고추밭이었다.
검산성 아래의 고추밭. 빨갛게 잘 익은 고추들이 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