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새로운 발굴 소식이 알려졌다.
토제 방울에 여러 그림이 선각(線刻)된 것들이 발견되었는데. 먼저 문화재청 보도자료를 보자. 아마 이 보도자료는 현장을 담당한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건국신화 그림 6종’ 새겨진 토제방울 출토
- 5세기 후반 가야 시조 ‘난생(卵生)’ 신화 형상화, 건국신화 투영된 유물 최초 사례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재)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에서 발굴조사 중인 사적 제79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가 확인되었다. 또한, 가야 시조가 탄생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6종이 새겨진 직경 5cm가량의 토제방울 1점과 소형 토기, 화살촉, 어린아이 두개골 편 등 유물도 함께 출토되었다. 고령군(군수 곽용환)은 20일 오후 2시 발굴 현장에서 이번에 출토된 유물들과 현장을 일반에 공개한다.
고령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신청한 ‘가야고분군’의 하나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 내 탐방로 조성과 안전관리 등을 위한 무인감시카메라 설치를 계획하면서, 사업에 앞서 지난 2월부터 발굴조사 중이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에 조성된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가 확인되었다. 그중 낮은 곳에서 확인된 제1호 석실묘의 경우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데, 고령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횡혈식 무덤이다. 대가야 시대의 묘제는 수혈식(구덩식)에서 횡혈식(굴식)과 횡구식(앞트기식)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변천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매우 큰 학술적 의미를 갖고 있어 주목된다.
* 횡혈식(굴식, 窟式): 고분(古墳) 내부 구조를 만드는 방식의 하나. 석재를 이용하여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널방 벽의 한쪽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무덤 방식
* 횡구식(앞트기식): 세 벽만을 쌓고 한쪽 벽으로 드나든 후 밖에서 벽을 쌓아 막는 무덤 방식
특히,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유물은 5세기 말경 조성된 대가야 소형 석곽묘에서 나온 토제방울 1점이다. 어린아이가 묻힌 이 석곽묘 규모는 길이 165cm, 너비 45cm, 깊이 55cm정도로, 조성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당시 유물의 부장양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토제방울 외에 소형 토기 6점, 쇠 낫 1점, 화살촉 3점, 곡옥(曲玉) 1점 등과 어린아이의 치아와 두개골 편이 함께 출토되었다. 함께 묻힌 토기나 철기가 대가야 물품인 것으로 보아 생활용품으로 제작된 이 토제방울 역시 대가야의 것으로 추정된다.
직경 5cm가량의 토제방울에는 거북, 관을 쓴 남자, 춤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6개의 독립적인 그림(선각그림)이 방울 표면에 선으로 새겨져있다.
* 선각그림 6종: 남성성기(구지봉), 거북(구지가), 관을 쓴 남자(구간),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금합을 담은 자루
각각의 그림은 하나하나가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오는 건국신화의 내용과 부합되어 대가야 건국신화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동안 문헌에서만 나오던 건국신화의 모습이 유물에 투영되어 발견된 최초의 사례이다. 이번 토제방울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건국신화는 더 이상 금관가야만의 전유물이 아닌 가능성이 높아졌다.
* 가락국기(駕洛國記): 고려 문종 때인 1075~1084년에 편찬된 가락국에 대한 역사서
이번 발굴로, 알에서 시조가 태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는 가야지역 국가들의 공통적인 건국신화에 담긴 핵심요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토제방울에 새긴 그림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여러 가야의 건국신화를 재조명할 증거자료로서, 우리나라 고대사 특히 가야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무덤과 유물들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 관한 학술정보 확대와 앞으로 대가야는 물론 모든 가야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기반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에서 배포한 파일. 더 많은 사진이 담겨 있다.
0320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건국신화 그림 6종’ 새겨진 토제방울 출토(붙임).pdf
그런데 나는 이렇게 건국신화를 형상화했다는 해석에 선뜻 동의 하기 어렵다. 너무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해석이다.
첫째, 이 방울들은 어린 아이가 묻힌 구덩이에서 나왔다. 왜 건국신화를 아이 무덤에 묻었는가? 권력자의 신성성을 내세우려면 성인 권력자의 무덤에 묻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평소에 그 유물을 갖고 권위를 포장하다가, 죽어서 묻힐 때 함께 껴묻었다든가... 이런 경우와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둘째, 하늘에서 내려오고, 알에서 태어나고... 그 신성성에 기대었던 고대의 권력자들. 그 권력을 상징하고 수식하던 신화. 그런 신화를 어째 토제 방울에 새겼을까 의심스럽다.
상징을 표현하는 데 선택된 재질이 문제이다. 금동으로 만든 금속판이라든가... 그런데 흙을 구워 만든 것이다. 더구나 아이 무덤에 묻혀 있다가 출토되었다.
며칠 뒤, 경향 이기환 기자가 이와 관련된 논란을 담아 기사를 냈다.
< '가락국 신화의 대가야 버전' 방울, 사실일까 억측일까 > (경향, 19.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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