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발굴소식이 한겨레에만 실렸다.
< 경산 임당동 중대형 고분…‘압독국’ 후예 무덤 추정 > (한겨레, 15. 4. 27.)
나는 원효의 고향이 경산 쪽이라는 『삼국유사』기록을 놓고. 어쩌면 6세기에 아시촌 소경의 설치와 함께 왕경에서 지방으로 이주한 귀족들 - 6두품급 귀족들 -의 후예가 아니었을까 추정했었다.
그러나 이런 발굴소식을 접하면서.
어쩌면 원효 같은 경우가 원래 경산에 뿌리내리고 살던 가문이 6세기 이후 골품제 확립과 함께 6두품으로 편제되어 중앙에 와서 활동할 자격을 지니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만, 그렇게 생각할 때 여전히 걸리는 문제가.
이렇게 5세기까지만 해도 지방에서 잘 나가던 세력들을 6세기에 들면서 두품신분으로 편제한 다음에.... 그 직후부터 지방인들에게는 외위(外位)를 주는 등으로 왕경인과 심각하게 차별하기 시작했는지, 그 차별을 오히려 법제화했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래서 고대사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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