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시내에서 서쪽으로 10여 km 떨어진 곳에 금척리 고분군이 있다. 이곳은 옛 신라 6부 중에서 모량부가 있던 곳이다.
KTX 신경주 역을 지나서 4번 국도로 북쪽으로 조금 더 가다보면 아래와 같은 고분군이 나온다. 아래 사진은 2013년 가을에 찍은 것.
일제 강점기에 조사할 때 52기의 무덤이 있었으나 현재는 32기 정도가 확인된다. 이곳의 고분은 아래 지름 20m가 넘는 대형에서 중소형까지 여러 종류가 섞여 있다. 주로 적석목곽분이라고 추정하는데, 그 중에는 경주시내에서 보듯히 봉분 2개를 붙여 축조한 표형분(瓢形墳)도 있다.
일찍이 1952년에 3기의 고분이 발굴된 적이 있었고, 1981년 상수도 공사를 할 때 사적지로 지정된 구역 바깥의 남쪽에서 고분이 발견되었었다.
2014년 여름. 경주박물관에서 이때 나온 유물의 보존처리를 끝내고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8월 5일. 경북 군위의 화산산성이 있는 화북리를 들렀다가 하루를 묵고. 다음날에 경주박물관에 잠깐 들렀다.
1981년 발굴한 돌무지덧널무덤은 한 봉분 속에 나무덧널[木槨] 2개를 나란히 만든 것이었는데, 부부를 합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5~6세기 무렵이다.
무덤 안에서는 모두 2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이 중에서 45점이 박물관 로비에 전시박스를 설치하여 공개되었다.
나와 있는 대표적인 유물로는 화려한 장식을 가진 기마벌걸이(鐙子), 은제 허리띠, 유리구슬 목걸이, 금귀걸이, 큰 쇠칼子 등이 있다.
▼ 등자(위)와 말장식 행엽(杏葉)(아래 왼쪽)
▼ 등자의 장식부를 확대한 사진
▼ 큰 쇠칼과 작은 칼들. 경주 고분에서 흔히 출토되는 모양이다. 손잡이 부분의 은제 장식도 보인다.
새로 산 소니 A6000을 가지고 갔음. 실내에서 찍을 때 적절히 조작해주어야 하는 것을 귀찮아서 안했더니, 더러 노이즈가 잔뜩 생긴 경우도 있다. 위의 쇠칼이 그런 경우.
▼ 은제 허리띠.
전시박스 유리에 내 모습이 그대로 찍힘. 편광필터를 장착할 수준이 안되는 카메라이므로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음.
그러나 아래 사진처럼 부분을 끌어당겨 찍을 때면, 꽤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다. 특히 아래 사진은 평면이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초점이 맞아떨어진다.
▼ 은데 허리띠의 부분 확대. 정교하게 투조한 은판을 리벳으로 가죽에 고정시켰다.
▼ 구슬 목걸이
이들 고분에 박혁거세 때 금으로 만든 자[金尺] 를 묻었다고 해서 금척리(金尺里)라고 한다는 등의 전설이 있으나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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