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북구 달천동 1-7 일원은 고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철생산을 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몇 년 전,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보존할 것이냐 말 것이냐 논란이 되었을 때, 토양에 유해물질인 비소 성분이 많아서 원형 보존은 불가능하고, 흙을 덮어서 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소식이 들렸다.
연합에서 소개하는 글을 실었다.
< 고대 제철 산업 요람…울산 달천철장 > (연합, 18. 12. 29)
* 이 기사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음. 울산 달천 철장의 주소를 <달천동 산 20-1 일원>이라고 한 것은, 충북 충주시에서 발견된 야철유적을 잘못 말한 것임.
울산 달천 철장의 주소는 북구 달천동 1-7번지임.
아마 경주의 신라가 달천 지역을 장악하고 철을 공급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달천 철장의 위치는 경주에서 외동읍을 지나 관문성이 있는 모화 남쪽이다. 일찍부터 사로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음직한 위치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으로 수출된 철도, 달천의 정치세력이 독자적으로 일본과 교역했다기보다는, 상위의 정치세력과 이루어진 교역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흔히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에서 변한(김해)에서 철이 생산되어 낙랑, 대방군은 물론, 예와 왜에까지 수출한다는 내용때문에, 김해 지역을 철 생산이 많았던 곳으로 이해한다. 가야를 철의 왕국 운운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4세기 기준으로 판단하더라도 김해 지역 고분에서 나오는 덩이쇠(鐵錠)의 양은, 같은 시기 경주 고분에서 출토되는 덩이쇠의 양과 비교되지 않는다. 경주가 압도적이다.
그래서 나는 김해 지역은 수로, 해로를 이용하여 철이 교역되는 거점이기는 하되,
철이 생산된 지역은 김해보다는 다른 지역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김해는 철의 집하장 역할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중국인 관찰자의 눈으로 보면 철이 생산된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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