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3일.
추석 전날이라, 좀 한가할 것으로 짐작하고 강화도로 갔더니. 예상은 빗나가고, 강화도 들어가기까지 꽤나 도로가 막혔다. 섬 중간쯤 가서야 한가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몇 군데를 다녔지만, 계룡돈대를 가보지 못하여 이곳 한 곳만 목표로 삼았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도 진입로가 좁은 농로인데, 차량이 제법 주차되어 있고, 사람들도 10여 명 이상. 아이 데리고 온 답사객을 비롯하여, 낚시하러 온 사람 등등.
계룡룡돈대는 숙종 연간에 강화도에 쌓은 53개의 돈대 가운데 하나.
섬의 서쪽 바닷가에 석모도와 마주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작은 장방형 돈대로, 방향은 시계 방향으로 조금 틀어져 있다.
북쪽에서 접근하면서 멀리 바라본 모습.
조금 더 다가가서 본 모습.
시계 방향으로 좀 틀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모습.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돈대라는 것이 대개 그렇지만, 규모가 작다. 그런데도 경사진 언덕에서 가까이 찍으려니, 16mm 광각에 겨우 들어온다.
최근 보수 정비한 것과, 원래 남아 있던 돌이 확연히 구분된다. 이렇게 성곽을 보수 복원할 때 옛돌과 새로 끼운 돌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하게끔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 당국의 원칙이, 아주 보수적이다. 보수 당시의 원형과 보수한 이후의 모습이 구분되게끔 해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물론 이렇게 해도, 세월이 흐르면 나중에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위 사진에서 왼쪽편 가장 아래쪽에서 6번째 돌에 아래와 같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글자들 중 禦 자는 御 자로 새긴 것인데, 복잡한 획을 생략하고 간단히만 새겼다.
강희 18년은 조선 숙종 5년(1679)이다.
계룡돈대는 강화유수 윤이제가 쌓았다. 이때 경상도 군위에서 동원되어 올라온 병사들이 계룡돈대를 쌓았다는 새김글이다. 이런 새김글의 전통은 고구려에서 신라, 삼국으로. 이후 조선시대까지 면면히 내려온다. 일종의 실명제이다.
돈대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면 아래와 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올라서서 바라보면 이런 모습. 멀리 석모도가 보인다.
각도를 달리해서 본 모습. 규모가 아담하다.
바다 쪽으로 가서 보면, 추석 전날인데도 개펄에 낚시하는 사람. 그리고 트럭 몰고 가족들과 함께 와서는 천막치고, 뭘 잡아서는 끓여 먹으려는지 불도 피우고.... 아마 도시에 나가 있는 손자들이 왔다고, 가까운 곳에 있는 주민들이 데리고 나와서 이색적인 체험을 시켜주려고 하는 모양이었음.
날이 좀 맑고 가을하늘 다왔더라면, 파란 하늘에 구름이라든가. 아니면 서쪽으로 기우는 석양을 배경으로 좀 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그렇다고 다시 언제 올 시간이 있을지도 기약하기 어렵고.
참고로 수년전에 다녀온 <장곶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