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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삶

메르스와 비정규직

 

  2015년 5월~6월.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메르스 '사태'

  정보의 초동대처 부실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전염병. 그리고 서울시장 박원순이 "과잉대응이 늦장대응보다 낫다"며 자체 조치에 나서자, 정부도 마지못해 따라나서서 뒤늦은 감염자 파악과 격리조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공개에 미적거리며 동참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자는 늘고, 의심자와 격리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사망자도 벌써 14명을 넘어섬.

  2차 진원지인 삼성병원을 치외법권 지역처럼 방치하며 자체 조사와 조치를 맡겼더니.

  곳곳에 구멍뚫인 행동만 하고 앉았고...

 

  그 와중에 들려온 소식.

  삼성병원 자체의 역학조사에서는 전혀 파악대상이 안된 '사람들'이 있었더라. 그 병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 외주 용역업체 직원들 -. 오늘 이들 중에서 감염자가 나와서 발칵 뒤집힌 상황.

 

  < 정규직 아니라는 이유로…격리 안 된 전산직원, 742명 접촉 > (경향, 15. 6. 15)

 

  한국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

  애초에 삼성병원에서는 자기 병원 안에서 감염 우려가 있는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는데도 부실하여 의사 환자가 2명이나 나왔고(그 와중에서 국회에서 그 병원 의사는 "우리 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렸다"는 드립).

 

  그런데 정작 그 병원에서는 자체 조사할 때 비정규직 용역업체 직원들은 파악대상에도 넣지 않았음.

  그들에게는 비정규직, 용역업체 직원들은 한 공간에서 일을 하지만, 동료도 아니고... 어쩌면 사람도 아니었을 수도 있음. 일상 속에서 그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태도가 결국 이판에 나타난 것. 그래서 서울시에서 파악하겠단다.

 

  < 서울시 "삼성서울병원 비정규직 2천944명 전수조사" > (연합, 15. 6. 15)

 

  12살의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가서 7년만에 과거에 급제했다. 그리고 29살에 신라로 돌아오는데, 그동안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뭘 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12살 소년이 어떻게 혼자 당나라에서 밥해먹고 빨래하고... 여행할 때 짐을 지고 가고... 이런 이야기들은 최치원의 글 속에서 한 마디도 찾을 수 없다.

  혼자 다 했을까?

 

  나는 노비를 데리고 갔을 것이라 판단한다.

  그런데 왜 한 마디 언급이 없을까? 최치원의 사고방식 속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은 언급할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사람 취급 안했다"는 이야기이다.

 

  삼성병원이 비정규직, 용역업체 직원들을 애초에 역학조사 대상에 넣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참...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꼴을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한국의 비정규직수는 작년 기준으로 600만을 넘었다. 전체 노동자의 32%를 넘는 비중이다. 이런데도 관리자의 안중에는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말이다.

  이들 600만명의 비정규직들이 매번 선거 때마다 몇 번 후보를 찍었을까?

  나는 그들의 절대다수가 1번을 계속 찍어왔을 것이라 추정한다.

 

  비극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