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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답사기/풍경,유적

발해 상경용천부

  이번 답사의 첫 일정은 발해의 상경(上京) 용천부(龍泉府)가 있던 흑룡강성 영안시(寧安市) 발해진(鎭)이었다.

  2012년 6월 16일. 날씨는 썩 좋지 않았다. 구름이 많이 끼었고, 언제라도 비가 올  듯한 분위기에서 연길을 출발.

 

  연길에서 돈화를 거쳐 고속도로를 부분적으로 이용하는 길도 있으나, 운전하시는 정선생님은 도문(圖門) 쪽으로 가서 왕청현(汪淸縣)을 지나 영안시로 들어가는 코스를 택했다. 시간은 비슷한데, 이 길이 구불길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짧다고...

  덕분에 2시간 30분 가량 한적한 시골길 풍경들, 그리고 중국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임업구역들에 잘 가꾸어진 숲들을 한껏 감상하면서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영안시에 가까이 와서 발해진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과거 일본인들이 붙인 동경성(東京城)이라는 지명이 몇 군데 간판에 보인다. 지금은 동경성진(鎭)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청나라가 발흥한 17세기 이후 영고탑(寧古塔)으로 불렸다. 일제 강점기에는 망명한 대종교 교단이 본부를 두고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구글 위성사진으로 보면 상경이 있던 곳은 아래와 같다. 외성과 내성(궁성)의 흔적이 제법 또렷히 보인다.

  외성은 둘레 16km가 넘는 대규모 토성이다. 지금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차를 타고 접근하는 동안 , 나즈막히 남은 외성 성벽 부근에는 줄지어 자라는 나무들이 일종의 표지처럼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잠시 다른 곳으로 천도했던 10년 가량을 제외하면, 발해는 존속한 기간 내내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아래 사진의 붉은 색 표시한 곳이 외성의 모서리 부분이다. 원래는 외성 성벽의 잘 남은 곳도 사진으로 좀 담고 싶었으나 이날 돈화까지 가기로 일정을 잡는 바람에 시간도 쪼들리고, 점심먹을 곳을 찾느라고 포기했다.

  외성 내부의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 잘 정비한 곳이 내성이다.

 

  내성은 발굴을 끝낸 다음에 잘 정비해놓았다.

   너무 잘 (?) 정비해서 좀 뺀질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발해 유적 곳곳을 이렇게 정비한 곳이 많으니, 조만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

  내성 앞에 세워놓은 안내 석판의 내성구조도. 발굴조사 결과를 반영하여 작성한 것이다.

 

 

  내성, 즉 궁성의 사방 둘레는 약 3.9km이다.

  이상하게도, 궁성으로 들어가는 문은 크고 높은 축대가 가로막고, 그 좌우 끄트머리에 좁은 출입문을 내놓은 모양이다. 첫번째 궁성문을 이렇게 통과하면 다음 번 궁궐로 들어가는 곳도 이렇데 되어 있다. 그래서 겹겹이 이런 문을 통과하면서 제일 북쪽의 건물지에 닿는다.

 

  위의 안내판 사진에서 제일 아래쪽 정면이 아래 사진이다. 

 

   내가 사진 찍는 곳에 도로가 나 있는데 비포장이다. 그리고 주차장 공사를 하고 있는지... 인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저기 앞까지 들어가려면, 디딜 때 움찍거리는 박석을 밟고 가야 한다. 수년 전에 발굴을 끝내고 일반에게 입장료를 받고 공개하면서 반질반질하게 단장한 결과라고 한다.

  어쨌든 이렇게라도 해서 공개해주면 좋다. 아예 못들어가게 하는 것보다는...

 

 ▲ 회를 섞어 출입구 양쪽에 쌓아 올려 놓았던 오래 전 축대에 겹쳐서 정비한 모습.

 

  위 사진은 흔히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교과서에 실린 사진을 보면, 이게 대체 성벽인지 문인지 뭔지 ... 알 수 없는 각도로 사진을 실어놓고 '상경 용천부'라든가 '오봉루(五鳳樓)'라고 설명해놓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흔히 원래 이 출입문 위에 올라 서 있던 누각의 이름이 오봉루였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교과서에 이런 설명을 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

 

  오봉루란 이름은 명나라 말~청나라 초기의 장진언이 『영고탑산수기(寧古塔山水記)』에서 이곳을 묘사하여 "앞에는 5개의 기초가 있는데 돌로 쌓았고 오봉루의 구조와 비슷하다"고 한데서 비롯된다. 흔히 12지 동물로 방위를 표현할 때 12시 방향에서부터 자축인묘... 이렇게 해서 정남쪽이 오(午:말)이다. 그래서 남문을 '오문'이라 한다.

 

  남문은 오문(午門)이라고 하고, 흔히 오봉루라는 이름도 곧잘 쓰인다.  현재 중국 자금성에도 오봉루가 있다.

  장진언은 청나라 궁궐의 출입문 누각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곳을 "오봉루와 비슷하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따라서 발해 궁성을 출입하는 이곳의 이름이 오봉루라고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할 것이다. 교과서를 쓰는 사람이 현지 관광 가이드의 설명을 아무 검토 없이 옮겨와서는 곤란하다.

 

  출입문을 통화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제1, 2... 궁전지가 차례로 나타난다.

  궁전 건물들은 모두 사람 키를 조금 넘을 만튼 축대 위에 들어 서 있었다. 그런데 건물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중앙에 설치되지 않고 모두 좌우 쪽에 치우쳐서 만들어졌다. 궁성 출입문에도 중앙 문이 없이 좌우에 2개씩의 문을 둔 것과 같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한 설명이 따르지 못하는 상태이다. 

 

  아래는 여러 건물지를 따라 깊숙이 북쪽으로 가다가 제일 마지막 건물지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날씨가 흐릿하니 구름이 끼었다 말았다 하는 바람에 파란 하늘은 잠시밖에 보지 못했다.

 

 

  이 지역은 화산지대이다. 화강암이 부족한 지역인 만큼, 궁전지에 사용된 석축은 모두 현무암을 다듬은 것이었다.

  그런데 새로 정비한 곳은 톱으로 잘 썰듯히 반듯하게 돌을 잘라 복원한 것들이라, 작위적인 느낌을 준다. 마치 우리 지자체들이 삼국시대 성곽을 교육현장으로 복원한답시고 반듯한 돌로 다시 쌓는 바람에 "이게 뭔가?" 싶은 느낌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싸이 블로그의 글들을 옮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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