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6일.
연길에 숙소를 두고 움직이려니 돈화 쪽 유적을 둘러보는 일정이 조금 애매해진다. 원래는 17일에 돈화와 화룡을 함께 둘러보려고 했다가, 16일 상경 용천부였던 영안시(寧安市) 발해진(渤海鎭)을 돌아보고 시간이 조금 남는 듯하여 돈화를 함께 보았다. 운전하신 정선생님께서 꽤 고생하신 날.
우리가 답사하는 기간은, 연길을 중심으로 그 일대가 3주째 흐리고 간간히 비가 내리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우리 답사 내내 그랬다.
발해진에서 돈화까지 오는 길에서는 가끔 굵은 빗줄기를 꽤 오래 만나기도 했다.
돈화시내에서 <강동24개돌 유적>을 잠시 보고, 다시 차를 몰아서 동모산으로 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고, 날도 약간 어두어지는 중이라서 큰 욕심은 내지 않고, 멀리서 원경 사진이라도 담고 가자는 생각.
대조영이 영주를 빠져나와, 추격하는 당군을 천문령에서 격퇴하고 계속 동진하여 동모산 아래에서 나라를 세우고 진(震)이라고 했다는 동모산. 기왕의 연구에서는 여러 추정이 있었으나 지금은 돈화시 서남쪽의 성산자산성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성산자산성을 동북쪽에서 멀리 바라본 모습
▼ 조금 더 동쪽으로 가서 바라본 모습.
산 정상부는 평탄지가 있어서 건물지와 군사조련장 등으로 추정하는 장소가 있다. 산성 위에는 일반인 출입이 안된다고 한다.
이곳을 찾으려고 할 때 함께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영승(永勝) 유적이다.
동모산에 산성이 있다면 가까운 곳 평지에 지배층의 집단 주거지가 있었으리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치 고구려가 평지성과 배후 산성이 짝을 이루고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 평지 주거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 동모산 동쪽의 영승유적이다. 남북 1km, 동서 0.7km 정도의 유적인데, 성벽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건물지의 대부분은 금대(金代) 이후의 것들인데,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의 화폐인 개원통보, 그리고 발해 기와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그래서 이 유적을 대조영이 처음 나라를 세웠던 '구국(舊國)'의 터전으로 추정한다.
▲ 위 사진이 영승촌을 북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어두워지는 터라, 거기까지 차를 몰고 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차라리 여기쯤에서 원경을 찍어두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
사진을 찍은 곳은 정혜공주묘가 발견된 육정산 고분 바로 아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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