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3일.
전날 오후에 예천에 도착. 저녁에 명봉사 자적선사비 음기를 야간작업으로 조사하고 읍내에서 묵은 뒤, 다음날 아침에 동본동 석불입상과 삼층석탑에 잠시 들렀다.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보수공사 중이라 비계를 설치하고 장막을 둘러놓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번에 갔더니 깔끔하게 주변도 정리했고. 그러나 날이 좀 덥고 흐려서 사진이 별로이다. 새로 산 서브용 카메라에 내가 익숙해지지 못한 탓도 있고.
예천읍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한천(漢川)의 남쪽에 개심사지 석탑이 남아 있고, 여기서 2시 방향으로 한천을 건너 동북쪽의 주택가에 삼층석탑과 석불입상이 남아 있다.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한천쪽에 쌓은 뚝의 바로 북쪽이다. 지금은 주변을 좀 정비하여 사진찍은 곳에 주차장을 마련해놓았다. 오래 전에는 내가 사진을 찍은 곳이 논이었는데, 이제는 주택가가 확장되어 주변에 작은 아파트들도 있고...
소니 A6000으로 찍었는데. 아직 적응이 잘 안된다.
내 느낌에는 누런끼가 있는 듯해서 색온도를 좀 낮추었더니, 이번에는 푸른 느낌이 좀 강하게 조정된 듯. 그러나 누런끼가 있는 것보다는 낫다. 뭐 이건 내 기준이니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이런 모습.
석탑 기단부에는 돋을새김으로 사천왕을 새겼다. 그러나 사천왕 조각 수준은 썩 빼어난 편은 아닌 듯하다. 물론 마멸이 많이 되어서 상태가 좋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고려 초기에 세워진 개심사지 석탑의 조각과 비교하면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는다. 보물로 지정된 것인데 대략 9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한다.
위 사진을 찍은 각도는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석탑도 남북 방위를 따르지 않았고, 석탑 뒤의 석불도 7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석불이 있는 곳에 금당이 있었다고 치면, 석탑과 금당도 남북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는다.
따라서 석탑과 석불이 동시에 조성되었거나, 석탑과 금당이 동시에 계획하여 조성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된다.
보물로 지정된 정식 명칭은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이다. 상태가 썩 좋은 편이다.
석불은 머리가 좀 커 보인다. 금동으로 만든 경주 백률사지 청동불 입상(경주 박물관)도 머리가 이렇게 큰 편이다.
높이는 346cm. 원래 반쯤 땅에 묻혀 있던 것을 1960년에 신도들이 파내어서 이런 모습으로 바로 세워놓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 자리에서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겠다.
석불입상은 발가락만 대좌에 조각하여 몸체를 올려놓는 방식으로 조각했다.
이런 경우는 경주 남산의 부처바위 뒷면의 석불입상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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