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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소식/고대

익산 쌍릉, 왕릉급 무덤으로 실체가 드러나다

  익산 쌍릉을 재발굴한다는 소식이 재작년인가 있었다. 그리고 치아가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있었고...

  < 익산 쌍릉 대왕묘에서 성인여성 치아 발견 >

 

 

 

  위와 같이 상자에 인골을 모아둔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발굴하면서 무덤방 안에서 수습하여 모아둔 것으로 짐작된다. 아래에 첨부된 사진에 보이는, 1917년 당시 발굴할 때의 상자 모습과는 다르다.

 

  어쨌든 이제 발굴이 대략 마무리되는 중인 듯, 무덤 방 안에서 찾은 유물들과 무덤방의 구조가 알려졌다. 아래는 문화재청 보도자료.


 

- 전형적인 백제 사비기 굴식돌방무덤과 인골 담은 나무상자 확인 -


 

  2기 묘가 나란히 있어 ’쌍릉‘으로 불리는 익산 쌍릉(사적 제97호)에서 전형적인 백제 사비기 굴식돌방무덤과 현실 안에서 인골을 담은 나무상자가 발견되었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과 익산시(시장 정헌율)는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8월부터 이곳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쌍릉(대왕릉, 소왕릉) 중 대왕릉은 입구가 중앙에 있으며, 단면육각형의 현실(玄室)로 축조된 전형적인 백제 사비기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확인되었다. 대형의 화강석을 정연하게 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축조했는데, 현실의 규모(길이 378cm, 너비 176cm, 높이 225cm)는 부여 능산리 왕릉군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려진 동하총의 현실(길이 327cm, 너비 152cm, 높이 195cm)보다도 더 크다. 특히, 현재까지 조사된 사비기 백제의 왕릉급 무덤으로는 처음으로 판축(版築) 기법을 사용하여 봉분을 조성하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 대왕릉 봉분 크기: 직경 약 25m, 높이 5m 내외 
  * 현실(玄室): 시신을 넣은 널(棺)이 안치된 방
  * 판축 기법: 건축물 지반을 다지기 위해 흙 등을 여러 겹으로 단단히 다지는 기법


  앞으로 대왕릉의 세부적인 판축 양상과 봉분의 공간 활용 등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백제 사비기 왕릉급 무덤의 조성 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실 내부 중앙에 있는 화강암 재질의 관대(棺臺) 맨 위쪽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가 발견되었다. 1917년 일제강점기 조사 시, 발견된 피장자의 인골을 수습하여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이 인골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항온항습실로 옮겨 보관하고 있는데, 과학적 조사를 위한 학제간 융합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 최종 분석결과가 나오면 피장자에 대한 더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관대(棺臺): 무덤 안에 시신을 넣은 관을 얹어놓던 평상이나 낮은 대(널받침)

 

 

 


  아래는 더 많은 사진이 첨부된 파일.

 

0402 익산 쌍릉, 왕릉급 무덤으로 실체가 드러나다(붙임).pdf

 

 

  아래는 언론기사.

 

  <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실체 밝혀질까...> (경향, 18. 4. 2.)

 

 

  후속기사가 나왔다. 발굴후에 쌍릉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내용.

 

  < 익산 쌍릉, 발굴 뒤엔 어떻게 하나 > (연합, 18. 4. 24)

 

 

  최근 동향

  < '선화공주 허구설은 허구다'라고 편파 해석하는 이유 > (경향, 이기환 흔적의 역사, 19.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