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44) 썸네일형 리스트형 성덕대왕신종(세부모습) 2015년 2월 28일 저녁. 조명을 비춘 성덕대왕신종의 모습은, 평소 종각의 그늘에서 보는 것과는 수준이 다르다. 비천1 비천2 명문 용뉴(龍鈕)와 용통(甬筒) 상대(上帶), 유곽(乳廓), 유두(乳頭) 하대(下帶) 평소 그늘 밑에 있는 모습만 담다가, 이렇게 담아서 보니 경이로운 수준임. 익산 왕궁리 유적 2014년 10월 17일. 노랗게 색이 변한 나뭇잎들이 좀 남아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몇 년만에 들런 왕궁리 유적. 이곳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오층석탑이다. 그러나 느티나무 등의 잎은 이미 다 떨어졌고, 잔디만 녹색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였다. 예전에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되며 어수선한 분위기일 때 와 본 것이 마지막이었던 듯. 이렇게 깔끔한 모습을 본 것은 거의 20년이 넘은 것같다. [새로 산 미러리스 시험하느라고 사진을 좀 크게 실었으니 클릭해서 보십사] 이곳 주변에서는 발굴을 통하여 많은 것들이 확인되었다. 전각, 대형화장실, 공방 터와 정원 등이 확인되었는데, 그 중 화장실 터에서 나온 토양을 분석하여 기생충 알을 확인하기도 했다. 기생충 알은 단순히 흥미거리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과 건강.. 경주 남산 보리사 석불 2014년 9월 28일. 남산 보리사 석불을 제대로 찍으려면 아침 일찍 찾아야 하는데, 나는 늘 느즈막한 시간에 들런다. 이 날도 마찬가지. 소니 미러리스의 HDR 촬영으로 담은 남산 보리사 석불. 멀리 들판이 보이게 담고 싶었다.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과 불상 2014년 8월 23일. 전날 오후에 예천에 도착. 저녁에 명봉사 자적선사비 음기를 야간작업으로 조사하고 읍내에서 묵은 뒤, 다음날 아침에 동본동 석불입상과 삼층석탑에 잠시 들렀다.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보수공사 중이라 비계를 설치하고 장막을 둘러놓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번에 갔더니 깔끔하게 주변도 정리했고. 그러나 날이 좀 덥고 흐려서 사진이 별로이다. 새로 산 서브용 카메라에 내가 익숙해지지 못한 탓도 있고. 예천읍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한천(漢川)의 남쪽에 개심사지 석탑이 남아 있고, 여기서 2시 방향으로 한천을 건너 동북쪽의 주택가에 삼층석탑과 석불입상이 남아 있다.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한천쪽에 쌓은 뚝의 바로 북쪽이다. 지금은 주변을 좀 정비하여 사진찍은 곳에 주차장을 마련해놓았다. 오래.. 세계문화유산이 된 개성 2013년 6월, 개성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정식 등재되었다. 2014년 8월 13일에 방문한 개성에서 그 이후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유네스코 표지판이 나란히 함께 세워져 있었다. 하루종일 날이 좀 흐려서 하늘이 깔끔하게 나오지 못한 것이 불만이고. 또 서버용 카메라로 마련한 소니 A6000이, 성능은 좋은데, 16-50 번들렌즈가 주변부 왜곡이 심한 것이 불만. 하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기계든 가격에 맞는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던 바... ▲ 만월대(소니 A6000에 16-50은 이 정도만 해도 가장자리가 왜곡된다) 2007년부터 시작된 서북지역에 대한 남북공동 발굴사업이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올해 재개되었다.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기를. ▲ 선죽교 ▲ 성균관.. 경주 금척리 고분 특별전시 경주 시내에서 서쪽으로 10여 km 떨어진 곳에 금척리 고분군이 있다. 이곳은 옛 신라 6부 중에서 모량부가 있던 곳이다. KTX 신경주 역을 지나서 4번 국도로 북쪽으로 조금 더 가다보면 아래와 같은 고분군이 나온다. 아래 사진은 2013년 가을에 찍은 것. 일제 강점기에 조사할 때 52기의 무덤이 있었으나 현재는 32기 정도가 확인된다. 이곳의 고분은 아래 지름 20m가 넘는 대형에서 중소형까지 여러 종류가 섞여 있다. 주로 적석목곽분이라고 추정하는데, 그 중에는 경주시내에서 보듯히 봉분 2개를 붙여 축조한 표형분(瓢形墳)도 있다. 일찍이 1952년에 3기의 고분이 발굴된 적이 있었고, 1981년 상수도 공사를 할 때 사적지로 지정된 구역 바깥의 남쪽에서 고분이 발견되었었다. 2014년 여름. 경주박.. 관구검기공비는 규형비인 듯 2014년 5월 4일. 심양의 요령성박물관에 전시된 '관구검기공비(毋丘儉紀功碑)'. 오녀산성 전시관에 있는 것이 복제품이므로 이곳에 있는 것이 실물이라 생각된다. 내 기억으로도 복제품이라는 표시는 없었던 듯. ▲ 관구검기공비. 비스듬히 전시된 것을 읽기 쉽게 각도를 돌렸음. 그런데 흔히 '관구검기공비'라고 부르지만, 과거 일본인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고.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관구검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그렇다고 해서 관구검과 무관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부서져나간 곳에 이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 다만 이 비가 관구검의 고구려 침공 무렵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단편적인 내용을 통해서도 수긍이 가는 정도이다. 위나라에서 고구려를 공격한 장수의 이름도 관구검이 아니라 '무(毋)구검'으로 읽는 것이 바.. 개주 석붕산 석붕(고인돌) 요동반도에는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고인돌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곳에 있는 고인돌은 바둑판모양(남방식)이 아니라 대개가 탁자형(북방식)이다. 2014년 5월 3일. 대련(大連)의 숙소를 출발하여 오전에 와방점(瓦房店)의 고구려산성인 득리사(得利寺)산성을 둘러보고 고인돌을 향해 출발했다. 요동반도 최대급 고인돌이라는 석붕산(石棚山) 석붕 - 석붕(石棚)이란 중국인이 고인돌을 일컫는 말이다. 운전기사와 안내자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여 돌고 돌아 헤매던 끝에 우리 일행의 스마트폰 길안내 도움을 받으면서 결국 찾아내었다. 석붕산 고인돌의 위치는 아래. 행정구역으로는 개주시(盖州市) 석붕산촌. 구글 지도에 입력하여 찾아보면, 공장인지 축사인지 파란색 지붕 오른쪽을 가리킨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는..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