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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경주 구황동 모전석탑지

  2013년 11월 2일.

 

  경주에 여러 번 갔었지만 이번에 처음 간 곳이 있다. 예전에 걸어 다닐 때는 그냥 스쳐지나갔고, 차를 몰고 갈 때는 큰 길가에 정차할 데가 없어서 지나갔고.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을 좀 찍어두자 싶어서 좀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위치는 황룡사지의 정동쪽. 보문동으로 가는 길을 건너 오른 쪽.

  구황동 모전석탑지(模塼石塔址)라고 불리는 곳이다. 근처에서 분황사 모전석탑과 비슷한 크기로 다듬은 돌들이 발견된 적이 있어서 이렇게 이름붙였다.

  아마 사방으로 감실을 내고, 감실 입구 양 옆에는 인왕상을 세워두었으리라 짐작한다. 이 절터에서 나온 인왕상 중에 상태가 좋은 것은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그리고 남은 석재들은 이런 모습. 4구의 인왕상이 남아 있다.

 

  ▼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찍은 것.

 

 ▼ 서북쪽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며 찍은 것. 가운데로 멀리 보이는 산이 보문동 쪽이고. 더벅머리처럼 보이는 산이 낭산의 북쪽 끝자락. 구비를 살짝 돌아가면 황복사지 석탑이 있는 곳이다.

 

  아직 가을걷이를 다 끝내지 않은 논의 벼 색깔이 좋다. 조금 더 일찍 찾았더라면 배경이 더 화사했을 듯.

 

 

  주변 논두렁 등에 석재들이 흩어져 있어서, 이 절터는 제법 규모가 있었으리라 추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탑재를 모아둔 곳에는 모전석탑이 아니라 석탑의 지붕돌 파편도 여럿 보인다.(위 사진의 중앙 아래) 가까운 다른 장소에 세워졌던 것을 한데 모은 결과인 듯. 그러나 두 탑이 하나의 절인지 별도의 절에 있던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경주 사는 사람들의 전언(傳言)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에 이 부근에서 '도림(道林)'이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가 수집되었다고... 그래서 이 절의 이름이 도림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도 있다.

  도림사는 『삼국유사』경문왕조에 이름을 보인다. 왕이 된 뒤에 귀가 길어진 것을 알게 된 복두장(幞頭匠)이 평생을 발설치 못하다가 죽기 전에 도림사 대나무 숲에 가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같다"고 외쳤다는 이야기에 나오는 도림사. 일연은 여기에 "도림사는 옛날 서울로 들어가는 입구 숲 곁에 있었다[舊在入都林邊]"고 주를 달아 놓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는 이솝우화에도 나온다. 비슷한 설화가 『삼국유사』도 실려 있다는 것이 신기한 것.

  경문왕의 이 설화가 어떤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가? 하는 점은. 일찍이 동료들과 함께 낸 책 『문답으로 엮은 한국 고대사 산책』(1994, 역사비평사)에서 내가 쓴 「신라는 진성여왕의 실정으로 멸망하였는가」에서 생각을 풀어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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