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서 거의 3시간 가량을 가야 독도에 닿는다. 바다 사정에 따라, 또 배 종류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좀 다른 듯.
도착한 시간이 거의 3시 반 가량 되었다. 오전에 울릉도를 떠난 배는 풍랑이 잦아들지 않아서, 배가 접안하지 못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는 운이 좋았대나...어쨌대나... 옆 자리 아주머니들이 떠드는 소리.
일반 관광객들을 잠시 독도에 내릴 수 있게 하면서, 선착장을 넓히고 접안시설도 잘 갖추어놓았다.
독도는 동도, 서도 2개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배에서 내리면 바로 동도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서도는 갈 수 없다. 경비대나 어민들만 필요할 때 작은 배로 이동하는 듯.
400여 명이 한꺼번에 내리니, 내리는데만도 10분이 넘게 걸리고. 와글와글하는 와중에 잠깐씩 풍경을 찍을 수 있었음.
독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0분~30분 가량이다.
동도와 서도의 끝을 함께 담아본 것.
우리는 흔히 독도 영유권을 이야기하면서 "신라 장군 이사부..."를 들먹이지만, 막연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사부가 정벌한 것은 울릉도일 뿐이다.
다만, 육지와 울릉도가 소통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당시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고, 울릉도에 딸린 섬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랄까..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고려시대 이래의 기록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우산(于山), 무릉(武陵)... 조정에서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던 19세기 말가지도 명칭의 혼란은 이어진다. 눈에 띄는 것은, 갑신정변 직전인 1883년 3월 김옥균이 동남제도 개척사 겸 관포경사(東南諸島開拓使 兼 管浦鯨使)에 임명되어 여러 물자를 싣고 울릉도에 농업이민식 개척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죽도는 울릉도에서 바로 보이는 죽도이다. 문제는 석도이다. 석도는 어디를 가리키는가?
그런데 1882년 이규원이 울릉도 검찰사로 가서 조사할 때, 조선인 141명 중 115명이 전라도 출신이었다는 것. 전라도에서는 돌을 <독>이라 부른다. 지금도 전라도 해안의 무인도 돌섬은 <독섬>이라 불린다. 石島는 돌섬인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한자로 표기되면서 獨島가 되는 것. 따라서 대한제국 제령의 울릉도 부속도서 石島는 지금의 독도이다. 일본인 중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재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데야.. 뭐.
결정적인 것은, 일본 시마네현의 고시가 나오기 전, 1900년 10월 25일에 대한제국칙령 제41호가 먼저 나왔다는 것.
그 제1조에는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개정한다"는 것.
2조에는 "군청을 태하동에 두고, 관할구역을 울릉도 전체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시마네현 고시란 것은, 일제가 러일전쟁의 필요에 따라 독도를 은근슬쩍 편입시킨 도적질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앞장선 일본인 고기잡이 회사 사장이, 그 이전에 대한제국으로부터 독도 어로허가를 얻으려고 한 적이 있다는 것. 이 점이 잘 말해준다.
독도를 침탈의 역사라고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독도는 약간의 경비대만 상주한다.
사람 없는 곳의 바다는... 당연하지만, 참 맑다.
동도 쪽에서 바라본 서도. 얼마 전에는 이 자갈밭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난간을 설치하여 넘어가지 못하도록 해놓았다.
독도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재작년부터 매년 2학기에 새로 만들어 강의하는 교양과목 때문이었다.
공부를 하다보니, 그동안 막연히 알던 것들을 남에게 설명할 정도로 다시 확인하게 되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 싸이 내 블로그의 글을 옮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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