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소식/고대 (132) 썸네일형 리스트형 무주 대차리 고분군, 신라계 가야계 석곽묘 발견 무주 장수 이런 지역에서 가야의 유물들이 나오고, 가야 관련 유적들이 발견된 것은 오래 되었다. 주로 대가야 계통의 유물, 유적이기는 하지만, 수십년 전의 일반적 이해와 꽤 다른 양상이었다. 지금은 대가야의 진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남원까지 포함하여 신라의 진출도 일찍부터 두드러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양상은 삼국사기 등의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번에는 무주에서 신라계통의 고분들, 토기들이 제법 발견된 모양이다. 문화재청의 보도자료를 소개한다. - 무주 지역에서 발견된 전북 최대 규모의 신라 토기 확인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무주군청(군수 황인홍)과 군산대학교(총장 곽병선) 가야문화연구소에서 조사 중인 ‘무주 대차리 고분군’에서 신라·가야계 석곽묘와 함께 전북.. 충주 칠금동에서 3~4세기대 제련로 9기 추가 발굴 충주에서는 지속적으로 야철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마치 삼국시대에 제철로 특화된 지역이었던 것처럼. 이 사실이 흥미를 끄는 것이, 삼국사기 강수전에 보면, 그가 일찍이 야합하여 동거하던 여인이 야장(冶匠)의 딸이었다고 하고. 강수의 아버지는 미천한 여인이라고 해서, 강수가 유명해진 뒤에 새장가를 들라고 한다. 그러나 강수는 조강지처를 버릴 수 없다며 거절한다. 충주에서 발견되는 야철 유적들 가운데 그 어디에, 강수의 처가 자랐던 곳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칠금동에서 아주 상태가 좋은 제련로들이 추가 발견된 모양이다. 2016년도의 발굴은 내 블로그에서 이미 소개한 적이 잇다. 아래는 문화재청 보도자료. 충주 칠금동에서 3~4세기대 제련로 9기 추가 발굴 - 제련로(제철 가마) 9기 추가 확인해 .. 몽촌토성, 회전교차로·포장도로·대형 집수지 발견 몽촌토성(올림픽공원)에서 한성백제박물관이 발굴을 진행중이다. 이번에는 회전 교차로, 포장도로, 그리고 대형 집수시설이 발굴된 모양이다. 여러 언론에 난 기사들은 사진이 다른 경우가 많으므로, 이렇게 모아두면 참고된다. (연합, 18. 11. 13.) (뉴시스, 18. 11. 13.) (MBN, 18. 11.13.) 링크하기 싫지만, 동영상이 있어서 소개. (채털A, 18. 11. 13.) 강릉 초당동에서 신라 '찰갑(札甲)' 출토 강릉 초당동에서 신라 찰갑이 출토되었다. 언론에서는 강릉 지역이 일찍부터 신라에게 중요시되던 지역이었음을 알려준다고 보도하는데. 이건 상식이고. 일찍이 강릉지역에서는 신라 허리띠, 금동관 등을 비롯하여 신라 토기들이 다수 확인된 바 있다. 강릉은 7세기에 소경이 설치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20년 채 안되어서 말갈과 가깝다는 이유로 소경이 폐지되고 북진(北鎭)으로 바꾸었는데, 이곳에 자리잡은 진골 귀족들이 경주로 다 돌아간 것같지는 않고, 계속 살고 있었음을 추적한 연구가 있다. 강릉이 꽤 비중있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하일식, 2011 「신라 왕경인의 지방이주와 편적지」『신라문화』 38(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이번에 출토된 찰갑은 벅가리개까지 제법 완전한 모양이다. 문화재청 보도자료는 아직 안올라왔고. 몇.. ‘풍납토성나들목’ 일대서 35m 성벽 발견 올림픽대로 '풍납토성나들목'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풍납토성의 서쪽 성벽 아랫쪽이 발굴을 통해 드러났다. 연합 등 다른 언론에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경향신문이 먼저 보도한 듯. (경향, 18. 10. 9) 이곳은 삼표레미콘이 자리잡은 장소와 가까운데. 그동안 삼표레미콘이 풍납토성 복원을 위해 이전한다 안한다... 며 소송을 걸었던 곳이기도 하다. 성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초심에서는 재판부가 삼표레미콘 손을 들어주었고, 재심에서는 삼표가 패했다. 학계에서도 이전과 복원을 위해 재판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성벽 아랫부분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된 만큼, 현재 남아 있는 성벽과 이번 확인된 성벽을 이으면 삼표레미.. 장수 삼고리 고분군, 가야 유물(1, 2차 발굴) 전북 장수는 대가야 계통의 유물들이 출토되는 고분이 많다. 왜 이곳이 백제의 영향 하에 들어가지 않고 고령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 영향을 받고 있었을까? 일찍부터 학계는 일본서기의 기록 등을 분석하면서, 낙동강 하류가 신라에 의해 막히면서 대가야가 해상 교역로를 확보하려고 섬진강 유역으로 진출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런 해석은 지금도 유용하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교역로로 이어지는 루트를 이용한 것인가, 아니면 대가야가 섬진강 유역을 영토로 지배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대가야의 영향을 받는 현지 토착세력들이 존재했던 흔적인가... 등등은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이번(2018년)에 장수에서 다시 중요한 유물이 출토된 모양이다. 아직 문화재청 보도자료는 올라오지 않았고, 연합 기사만 나왔다. < 장수 삼고리 고.. 中서 4300년 된 고대 도시 발견…대규모 인신공양 만연 중국에서 발굴된 고대 인간의 거주지가 상당히 대규모인 듯. 발굴 결과를 해석하는데는 언론기사만 갖고서는 위험하지만. 일단 사진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사레임이 분명해보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18. 8. 27) 옥천에서 신라시대 산상 군사도로 첫 발견 옥천이라면 신라 관산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고. 유명한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이 죽임을 당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옥천에서 산 언덕 위를 지나가는 도로가 발견된 모양인데, 수레자국이 확인된 듯. 아래는 문화재청 보도자료. 충북 옥천에서 7세기 신라 관도(官道) 추정 도로 확인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의 허가를 받아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준식)이 작년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조사 중인 옥천 제2의료기기 산업단지 부지 내 유적에서 7세기 신라 고대 도로가 확인되었다. * 발굴 현장: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431번지 일원 이번에 확인된 도로는 남동-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며 산 정상부근 사면과 계곡부를 이어 조성된 것으로, 길이는 약 320m가 넘는다. 노면 폭은 약 5.6m에 달하고, 도로의 표면.. 이전 1 2 3 4 5 6 7 8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