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유산/국외

(7)
김인문의 친필 필적 비록 글 내용을 쓴 것은 아니지만, 필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듯. 중국 산시성(陝西省) 바오지(寶鷄) 시 톈타이 산(天台山)에 있는 비석에서 발견. 내가 보아도 탁본상 金仁은 워낙 분명하고. 마지막 글자인 問은 약간의 논란이 있겠지만 問으로 판독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 내가 판독하는 방법을 쓰면 금방 확인될텐데. (연합, 15. 6. 2.)
세계문화유산이 된 개성 2013년 6월, 개성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정식 등재되었다. 2014년 8월 13일에 방문한 개성에서 그 이후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유네스코 표지판이 나란히 함께 세워져 있었다. 하루종일 날이 좀 흐려서 하늘이 깔끔하게 나오지 못한 것이 불만이고. 또 서버용 카메라로 마련한 소니 A6000이, 성능은 좋은데, 16-50 번들렌즈가 주변부 왜곡이 심한 것이 불만. 하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기계든 가격에 맞는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던 바... ▲ 만월대(소니 A6000에 16-50은 이 정도만 해도 가장자리가 왜곡된다) 2007년부터 시작된 서북지역에 대한 남북공동 발굴사업이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올해 재개되었다.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기를. ▲ 선죽교 ▲ 성균관..
관구검기공비는 규형비인 듯 2014년 5월 4일. 심양의 요령성박물관에 전시된 '관구검기공비(毋丘儉紀功碑)'. 오녀산성 전시관에 있는 것이 복제품이므로 이곳에 있는 것이 실물이라 생각된다. 내 기억으로도 복제품이라는 표시는 없었던 듯. ▲ 관구검기공비. 비스듬히 전시된 것을 읽기 쉽게 각도를 돌렸음. 그런데 흔히 '관구검기공비'라고 부르지만, 과거 일본인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고.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관구검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그렇다고 해서 관구검과 무관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부서져나간 곳에 이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 다만 이 비가 관구검의 고구려 침공 무렵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단편적인 내용을 통해서도 수긍이 가는 정도이다. 위나라에서 고구려를 공격한 장수의 이름도 관구검이 아니라 '무(毋)구검'으로 읽는 것이 바..
개주 석붕산 석붕(고인돌) 요동반도에는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고인돌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곳에 있는 고인돌은 바둑판모양(남방식)이 아니라 대개가 탁자형(북방식)이다. 2014년 5월 3일. 대련(大連)의 숙소를 출발하여 오전에 와방점(瓦房店)의 고구려산성인 득리사(得利寺)산성을 둘러보고 고인돌을 향해 출발했다. 요동반도 최대급 고인돌이라는 석붕산(石棚山) 석붕 - 석붕(石棚)이란 중국인이 고인돌을 일컫는 말이다. 운전기사와 안내자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여 돌고 돌아 헤매던 끝에 우리 일행의 스마트폰 길안내 도움을 받으면서 결국 찾아내었다. 석붕산 고인돌의 위치는 아래. 행정구역으로는 개주시(盖州市) 석붕산촌. 구글 지도에 입력하여 찾아보면, 공장인지 축사인지 파란색 지붕 오른쪽을 가리킨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는..
2010년 6월의 집안 장군총 2010년 6월 21일. 점심을 먹었던 집안시내 동북쪽의 식당에서 바라본 것. 멀리 보이는 민둥산이 북한쪽이다. 이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다. 여름 날씨치고는 그다지 덥지도 않았고, 하늘은 아주 맑고, 가끔씩 구름이 흐르면서 사진 찍기에는 아주 적당한 날이었다. 정면 사진은 입체감을 조금 줄이지만, 그래도 1컷. 좌측면에서. 208년 9월까지만 해도, 묘실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뒷쪽의 돌무지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어긋남이 심해서, 이제는 못올라가게 한단다. 잘한 일이다. * 내 싸이 블로그의 글을 이전함
중국 집안 서대묘 2010년 6월 21일. 고구려 수도 집안의 서쪽에 있는 서대묘. 무너져내린 돌무지무덤이 마치 경주에서 볼 수 있는 표형분처럼 보인다. 무덤 속을 탐낸 자들이 조직적 인위적으로 돌무더기를 파낸 흔적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이렇다. 마침 흘러가는 구름이 무덤 뒷산을 지나는 바람에, 돌무더기의 윤곽선이 더 뚜렷이 보이는 사진이 되었다. 무덤 위에 올라가서 파헤쳐진 곳을 내려다보면 이렇다. 이런 모습 때문에, 중국 학자들과 일부 한국 학자들은, 모용씨에 의해 시신을 탈취당했던 미천왕의 무덤과 이곳을 관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이번에 파헤쳐진 모습을 좀 유심히 관찰하고서 내린 결론은, 이런 모양을 근거로 미천왕릉을 상정하기는 어렵다는 것. 이 이야기는 시간이 날 때 연구노트 정도로 작성..
발해 석등 2012년 6월 16일, 날씨가 흐렸다 갰다를 반복하던 날. 늘 사진에서만 보던 발해석등의 실제 모습을 보았다. 흑룡강성 영안시(寧安市) 발해진(勃海鎭), 즉 옛 발해 상경용천부(上京 龍泉府) 성 안에 있는 '흥륭사(興隆寺)'라는 절에 있다. 국사 교과서든 어디든 발해 석등으로 늘 소개되는 것. 어찌 사진을 좀 잘 찍어보려고 했지만, 뒷 건물 오른쪽에 공사중인 포크레인이 있어서... 정면에서는 이런 각도밖에는 안된다. ▼ 옆에서 찍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