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하여 드러난 양상을 판단할 때는 참으로 의아스런 경우가 있다.
영암 자라봉 고분, 즉 한국에 있는 전방후원분의 발굴 결과, 후원부를 먼저 다져 쌓고, 그 다음에 전방부를 만들고. 그리고나서 후원부의 봉토를 다시 파헤쳐서 석실을 만들고 시신을 안치했던 흔적을 확인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 영암 자라봉고분에서 드러난 전방후원분 축조 비밀 > (연합, 15. 4. 15.)
만약 발굴자들의 판단이 옳다면, 이는 일종의 수릉(壽陵) 즉 살아 있을 때 무덤을 미리 만들어놓고, 주인공이 죽으면 매장하는 방식이라 할 것이다.
중국의 진시황릉을 비롯한 많은 황제릉들은 이렇게 살아 있을 때부터 무덤을 축조한 경우이다, 그러나 한국 고대사회에는 고구려나 신라, 백제에서도 살았을 때 미리 무덤을 만든 경우는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현재까지 학계의 판단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은 그런 순서에 어긋나는 사례라는 이야기가 된다.
앞으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듯하다.
'발굴소식 > 고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납동식 한성백제 와당 용인 출토 (0) | 2015.06.02 |
---|---|
경산 임당동 고분은 압독국 후예 (0) | 2015.04.30 |
함안서 아라가야 최후의 왕묘 추정 고분 발굴 (0) | 2015.04.13 |
신라 귀족여성 무덤에 순장된 남성 (0) | 2015.04.09 |
신라 천년의 궁성, 마지막 흔적을 엿보다 (0) | 2015.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