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360)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건국신화’ 새겨진 토제방울 출토 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새로운 발굴 소식이 알려졌다. 토제 방울에 여러 그림이 선각(線刻)된 것들이 발견되었는데. 먼저 문화재청 보도자료를 보자. 아마 이 보도자료는 현장을 담당한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건국신화 그림 6종’ 새겨진 토제방울 출토 - 5세기 후반 가야 시조 ‘난생(卵生)’ 신화 형상화, 건국신화 투영된 유물 최초 사례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재)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에서 발굴조사 중인 사적 제79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가 확인되었다. 또한, 가야 시조가 탄생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6종이 새겨진 직경 5cm가량의 토..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세상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아님을, 지난 몇 년간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낡은 체제와 기득권 속에서 자신을 지탱해온 자들의 저항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김경수 지사의 법정 구속은 구체제 판사들이 자신의 힘을 보여주려는 행동으로 읽힌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받아들인다. "나도 힘있어, 건드리지 마" 이런 시그널로. 아니면 "니들도 엿먹어봐라"는 화풀이랄까... 2월 2일에 서초동 대법원과 중앙지법 앞에서 시위가 있었다. 대법원 앞에 먼저 갔다가... 거의 2천명 정도가 모였었나? 간단히 흔들리는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서울 중앙지법으로 행진하여 갔다. 처음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집회를 한 주력 커뮤니티는 루리웹 북유게인 것으로 알고 있고.. 우리가 몰랐던 고종…“그는 반민족행위자” 한겨레에서 3.1운동 100년을 앞두고 관련 연구자들을 모아 대담을 한 모양. 임경석, 박찬승, 김정인 교수의 대담인데, 한 번쯤 읽어둘 필요(동영상이니 보아둘 필요ㅎ ) 1990년대부터 서울대 이태진 교수가 고종을 다시 보자며 부정적 평가를 뒤집는 이야기를 많이 내세웠고.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민비 관련 뮤지컬이 유행하면서. 민비에 관한 평가도 이상해지기 시자했었다. 일반 시민이 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마치 고종과 민비가 '구국의 화신'처럼 오해되고 있는데, 사실은 그와 정 반대다. 그들이 일본에 맞섰다면, 그것은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한겨레, 19. 1. 23) '철의 왕국'은 가야가 아니라 신라 얼마 전, 울산 달천 철장을 소개한 연합뉴스 기사를 스크랩하여 담은 적이 있다. 그런데 달천 철장과 관련하여, 오늘은 경향신문에 자세한 연구동향을 소개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실 신라사 정공자들에게는 "가야는 철의 왕국"이라는 문구가 썩 석연찮은 것이 사실이다. 신라 고고학 전공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철생산, 특히 무덤에 꺼묻은 철제품의 수량만 보더라도 신라가 같은 시기의 가야를 압도한다는 것. 여튼 이기환 기자의 이 기사는 자세히 읽어볼 내용이다. (경향, 19. 1. 9) 김해 봉황동유적의 집모양 토기 요즘 김해를 비롯해서 가야 문화권에서 발굴이 활발하다. 중앙 정부의 국정과제(?)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니,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발굴의 성과를 주목해둘 필요는 있을 듯. 아래는 문화재청 보도자료. ---------------------------- 금관가야 중심권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집모양토기와 말발걸이 출토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에서 2015년부터 발굴조사 중인 금관가야 추정왕궁지인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집모양토기(家形土器)와 말발걸이(鐙子)가 출토되었다. 집모양토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건물지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이 토기는 평면 반원형의 벽체를 가진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정면에는 네모꼴의 출입구가 설치.. 가야 김해고분서 일본 유물 발굴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산 2-2번지 (한겨레, 19. 1. 3.) (오마이뉴스, 19. 1. 3.) (서울신문, 19. 1. 3.) "공산성 출토 옻칠갑옷은 당나라 제작품" (연합, 18. 12. 30) 학계에서 그동안 논란이 분분했던 것인데, 이번에 발표된 논문은 실증적 논리가 깔금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동안 논쟁을 일단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새로운 검토를 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덧 : 최근 논쟁을 소개한 한겨레 노형석 기자의 기사가 흥미롭고, 논쟁 정리도 잘되어 있다. (한겨레, 91. 5. 6.) 고대 제철 산업 요람…울산 달천철장 울산시 북구 달천동 1-7 일원은 고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철생산을 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몇 년 전,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보존할 것이냐 말 것이냐 논란이 되었을 때, 토양에 유해물질인 비소 성분이 많아서 원형 보존은 불가능하고, 흙을 덮어서 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소식이 들렸다. 연합에서 소개하는 글을 실었다. (연합, 18. 12. 29) * 이 기사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음. 울산 달천 철장의 주소를 이라고 한 것은, 충북 충주시에서 발견된 야철유적을 잘못 말한 것임. 울산 달천 철장의 주소는 북구 달천동 1-7번지임. 아마 경주의 신라가 달천 지역을 장악하고 철을 공급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달천 철장의 위치는 경주에서 외동읍을 지나 관문성이 있는 모화 남.. 이전 1 ··· 6 7 8 9 10 11 12 ··· 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