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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소식/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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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신창동유적-5세기 밭유적 광주 신창동 유적은 저명한 곳이다. (광주 광산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찍이 습지가 되어 보존상태가 좋은 목제품들이 나왔고, 악기와 농기구를 비롯, 기생충 알을 분석한 흥미로운 결과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이번에는 유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밭 유적과 함께 중요한 유물이 제법 출토한 모양. (뉴시스, 14. 10. 30.) (연합, 14. 10. 30.)
경북 의성 금성산고분에서 관모 출토 문화재청 보도자료 보도자료에 첨부된 사진파일 경북 북부지역 최초로 5세기대 신라 금동제 관모 발견 -의성 금성산고분에서 금제 장신구 등 다량 출토-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를 하는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재)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위치한 ‘의성금성산고분군(義城金城山古墳群,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에서 5세기 신라 무덤에 관한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주곽과 부곽으로 구성된 봉토분 4기에서는 ▲ 금동제 관모(冠帽 머리쓰개) ▲ 금동제 관식(冠飾, 머리쓰개에 다는 장식) ▲ 은제 관식 ▲ 은제 허리띠 ▲ 고리 모양 귀걸이 ▲ 유리구슬 목걸이 ▲ 은제 규두대도(圭頭大刀) ▲ 삼엽문 환두대도(三葉文 環頭大刀) ▲ 금동제 말 장식(행엽) ▲ 금동제..
나주 정촌고분의 금동신발 (연합뉴스, 14. 10. 23.) 이한상 교수의 인터뷰 내용은 반은 맞고 반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과거에 이 교수가 금관이 실용품이 아니라 장례용으로 제작된 것이었음을 밝혔을 때와 마찬가지이다. 특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이런 발언을 접하면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 신발이 장례용품으로 만들어 무덤에 껴묻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전혀 없는 디자인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신지 않는. 즉 손에 끼는 용도에 맞는 모양으로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에서 보고 익숙한 디자인을 전제로, 죽은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인 만큼, 실용성을 떨어뜨리는 복잡한 장식과 얇은 두께를 가지게끔 제작되었을 것이다. 아래 기사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상세하다. < 누가 신었을까? 백제 금동신발 출토 '금방 벗은듯..
삼척서 신라 최고승려 '국통' 새겨진 비석조각 출토 (연합, 14. 10. 6.) 사진의 비석 조각이 전체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國統'이란 글자가 왼쪽에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아 비문의 뒷면에 해당하는 음기(陰記) 후반부에 새겨진 글자인 듯. 따라서, 이 글자를 통일신라 때 '국통'을 지낸 사람의 비석이라 할 수는 없고. 국통을 지냈거나 [(前)國統], 현재 국통인 사람이 비석을 세우는데 관여한 사실을 새긴 부분일 가능성이 클 듯. 물갈이한 곳에 새긴 글자이지만 오른쪽에 여백이 많이 남아 있음. 그래서 이 비편이 전체 비석의 윗부분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아마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중간 부분쯤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門下弟子 前國統 .....]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