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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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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촌고분의 금동신발 (연합뉴스, 14. 10. 23.) 이한상 교수의 인터뷰 내용은 반은 맞고 반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과거에 이 교수가 금관이 실용품이 아니라 장례용으로 제작된 것이었음을 밝혔을 때와 마찬가지이다. 특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이런 발언을 접하면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 신발이 장례용품으로 만들어 무덤에 껴묻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전혀 없는 디자인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신지 않는. 즉 손에 끼는 용도에 맞는 모양으로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에서 보고 익숙한 디자인을 전제로, 죽은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인 만큼, 실용성을 떨어뜨리는 복잡한 장식과 얇은 두께를 가지게끔 제작되었을 것이다. 아래 기사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상세하다. < 누가 신었을까? 백제 금동신발 출토 '금방 벗은듯..
삼척서 신라 최고승려 '국통' 새겨진 비석조각 출토 (연합, 14. 10. 6.) 사진의 비석 조각이 전체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國統'이란 글자가 왼쪽에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아 비문의 뒷면에 해당하는 음기(陰記) 후반부에 새겨진 글자인 듯. 따라서, 이 글자를 통일신라 때 '국통'을 지낸 사람의 비석이라 할 수는 없고. 국통을 지냈거나 [(前)國統], 현재 국통인 사람이 비석을 세우는데 관여한 사실을 새긴 부분일 가능성이 클 듯. 물갈이한 곳에 새긴 글자이지만 오른쪽에 여백이 많이 남아 있음. 그래서 이 비편이 전체 비석의 윗부분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아마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중간 부분쯤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門下弟子 前國統 .....]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