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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국외

개주 석붕산 석붕(고인돌)

  요동반도에는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고인돌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곳에 있는 고인돌은 바둑판모양(남방식)이 아니라 대개가 탁자형(북방식)이다.

 

  2014년 5월 3일.

  대련(大連)의 숙소를 출발하여 오전에 와방점(瓦房店)의 고구려산성인 득리사(得利寺)산성을 둘러보고 고인돌을 향해 출발했다. 요동반도 최대급 고인돌이라는 석붕산(石棚山) 석붕 - 석붕(石棚)이란 중국인이 고인돌을 일컫는 말이다.

  운전기사와 안내자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여 돌고 돌아 헤매던 끝에 우리 일행의 스마트폰 길안내 도움을 받으면서 결국 찾아내었다.

 

  석붕산 고인돌의 위치는 아래.  행정구역으로는 개주시(盖州市) 석붕산촌.

 

  구글 지도에 입력하여 찾아보면, 공장인지 축사인지 파란색 지붕 오른쪽을 가리킨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는 아래에 표시한 곳이다.

  가까운 주변 지형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둥근 언덕 바로 정상부의 편평한 대지 한 가운데에 고인돌이 있다.

 

  표지석이다.

  원래 1963년 9월에 성급(省級)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가 1996년에 전국중점 문물보호단위로 승격하였다.

 

  고인돌 주변의 풍경은 이렇다.

 

 

  입지가 좀 특이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멀리 주변에 산들이 없지 않지만, 그런 산들 사이에 있는 구릉지와 평지의 한 가운데. 그 중에서 아트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남쪽으로 터인 곳에 인물을 세웠다. 원래는 사방을 석판으로 막아놓는 형식인데, 남쪽의 석판은 깨어져서 사라진 상태이다.

 

  뒤에서 보면 이렇다. 덮개돌은 길게 남북으로 향해 있고, 남쪽면의 받침돌이 입구처럼 터진 상태가 되어 있다.

  높이는 3.7 , 덮개돌의 남북 길이 8.6m, 동서 길이가 5.7m 정도이다.

 

  후대인들이 민간신앙을 꾸리는 장소로 이용하면서, 1973년 요령성 문물조사대 요남조(遼南組)가 조사할 당시에는 이 고인돌을 둘러싸고 묘우(廟宇)들이 있었다고 한다.

  묘우들의 배치도는 아래 도면과 같다.(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編, 1994 『遼東半島石棚』, 遼寧科學技術出版社)

 

  현재는 이들 묘우들이 모두 사라지고 주변이 정비된 상태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동네 사람들의 신앙처로 이용되는 듯. 석곽 내부에는 이런 복잡한 상(像)들과 향초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바닥에 깔린 판석 조각들은 남쪽 석곽(이것이 석곽인지는 논란이 있으나 편의상 이렇게 표현함) 을 막는 판석이었으나 안쪽으로 무너지면서 바닥에 깔려 부서진 것으로 짐작된다.

 

  앞에서 직접 보지 않으면 규모의 거대함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같이 간 이가 덮개돌 위에 올라가 보았다.

  흔히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을 크다고 이야기하지만, 석붕산 고인돌의 크기는 가히 압도적이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 고인돌의 사방 가까운 곳에서는 황토밖에 없음) 화강암을 반듯하게 다듬어서 만들었다.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은 덮개돌을 거의 다듬지 않았다. 두께도 고르지 않고 사방의 면들도 손질하지 않았다. 그러나 석붕산 고인돌은 무덤이라 치면 석곽에 해당하는 벽체들도 일정한 두께로 다듬고 표면을 매끄럽게 손질했고, 덮개돌도 아래 위를 매끄럽게 손질하여 조립하였다. 돞개돌의 사방은 매끈한 직선이다.

 

  이번 답사에서는 미리 공부를 하지 못하여 놓쳤지만,

  1991년에 덮개돌 윗면에서 아래와 같은 얼굴 모양의 선각(線刻)이 발견되었다고 한다.(위의 책) 그리고 석곽의 동쪽면 내부에서 아래와 같은 문자도 발견되었다.

  위의 책에서 조사자들은 이들 모두를 후대의 것들로, 문자는 범문(梵文)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후대인의 신앙처로 이용되면서, 덮개돌의 안쪽 위에는 벽화도 그려져 있다.

 

 

* 참고로, 요동반도에 있는 고인돌 하나를 더 소개.

  해성(海城) 석목성(析木城)에 있는 고인돌. 이 사진은 요령성박물관에 실물 크기로 만들어놓은 모조품을 찍은 것임.(내가 가진 실물 사진은 슬라이드라서 생략)

 

 

  이 모양을 보면, 뒷쪽과 앞쪽의 판석을 세운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방식은 석목성 고인돌과 석붕산 고인돌이 같다.

  따라서 석붕산 고인돌도 앞쪽의 판석이 안쪽으로 무너지면, 안쪽 바닥에 엎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추론이 나온다. 그래서 앞서 석붕산 고인돌의 내부 사진을 설명하면서, 앞쪽의 판석이 무너지면서 안쪽 바닥에 깔렸으리라고 추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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