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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답사기/풍경,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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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산직리 지석묘와 유인원기공비 2014년 5월 26일. 백제사택지적비를 보물로 지정하는 일로 부여박물관에서 회의를 마친 뒤, 혼자 사택지적비의 원래 발견지 근처를 찾아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산직리 고인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찍부터 한 번 확인하고 싶었던 곳이다. 거의 15년 전쯤이었나. 사진하는 친구가 "부여 근방의 고인돌을 보았더니 박물관의 유인원기공비와 똑 같은 석질을 가진 것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나보고 한 번 가보라는 말과 함께. 어렴풋이 기억만 하고 있다가, 마침 부여박물관에 갈 일이 생겨서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곳을 답사한 블로그들이 올린 사진에서, 정말 유인원기공비와 같은 석질이라고 생각되어 직접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행정구역 이름으로는 부여군 초촌면 산직리. 지도를 찾아보면..
부산성 가는 길4(끝) : 죽지랑과 득오 내가 처음 부산성을 찾은 것은 1988년 봄쯤이 아니었던가 싶다. 석사과정 때, 복학하고나서 무작정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고 1/2만5천 지도를 사서 들고 홀로 경주로 향했었다. 죽지랑과 득오 이야기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늦은 아침을 대충 먹고서 산길을 걸어 오르기 시작했었는데, 정상에 가까운 완만한 구릉지까지 오르는 동안 꽤나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다. 물론 오르는 길이 험하지 않아서 크게 힘들지는 않았었다. 또 1999년 초에 임기환 · 홍순민 선생과 함께 두 번째로 갔을 때는 날이 저물 무렵이라서 1/3쯤 오르다가 도중에 내려왔었다. 이제는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능선을 따라가며 남은 성벽도 제대로 살피고, 사진도 찍어보자고 작정하였다. 그러나 성벽 둘레가 7.5k..
부산성 가는 길3 : 부운촌과 여근곡 2006년 12월 18일 오후 2시경, 경주 시대로 들어와서 L선생과 합류하다. 그리고 원래 내 일정에 있던 대로, 경주와 울산 경계 지점에 있는 관문성을 함께 둘러보았다. 여기서 관문성이라 함은 길이 12km에 달하는 차단성(遮斷城)이 아니라, 이 차단성의 동쪽 산 꼭대기에 있는 테뫼식 신대리성(현지 지명을 따라 이름 붙임)을 말한다. 신대리성 성벽에는 모두 10개의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일찍이 박방룡 선생님이 찾아내어 보고하였고, 나도 한참이 지난 뒤에 다시 분석하여 글 한 편을 쓴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디지탈 카메라를 쓰기 전이라, 이번에 다시 가서 사진을 좀 만들어보려는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산꼭대기라 해도, 시간이 오후 4시가 넘으니 동남벽에는 짙은 그늘이 져서 깨끗한 촬영은 포기해야 했다...
부산성 가는 길2 - 장연사지와 불령사 2006년 12월 19일. 유천에서 부산성 아래까지 차를 타고 곧장 가면 답사의 재미가 없을 것이다. 가는 길목에 들러볼 유적지가 있는지 알아보니, 못가본 곳들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2군데를 고르고나서, 나머지 고인돌 등은 시간을 보아가며 들러기로 하였다. 장연사 터의 쌍탑 먼저 찾은 곳이 청도군 매전면(買田面) 장연리에 있는 장연사(長淵寺) 터이다. 매전면은 조선시대에 매전역이 있던 곳이다. 면 소재지를 지나 조금 더 가서, 매전초등학교 못미쳐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장연사 터가 있다. 제법 잘 생긴 쌍탑이 감나무 과수원 한 가운데 서 있다. 원래 절 이름이 장연사여서 마을 이름으로 옮겨진 것인지, 이름 모를 절터에 마을 이름이 옮겨 불려지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서탑은 무너져서 개울 아래에 흩어져..
부산성 가는 길1 - 유천역에서 이 글은 경주 서쪽 건천에 있는 부산성 답사기의 1편이다. 계획한 4편 모두를 합쳐야 온전한 답사기가 될 것인데, 우선 첫 머리를 시작해보자. 부산성(富山城) - 신라인은 성(城) 이름도 이렇게 붙였다. 왜 그랬을까? 나 나름의 대답은 이 답사기 [4편]에서 하도록 한다. 지금의 서울도 마찬가지이지만, 신라의 왕경(王京)은 전국의 온갖 물자가 두루 모여드는 곳이었다. 왕실과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거두어서 갖다놓는 곳이 왕경이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다보니 자연스레 장사치들도 모여들었다. 각 지방의 특산물은 물론이거니와, 외국에서 가져온 수입품들까지도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곳이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걷은 세곡(稅穀)들이 왕경으로 운반되어 와서 보관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지..
평양성 을밀대 2009년 2월 26일. 두번째로 평양을 방문한 때. 주체탑 위에서 내려다본 대동문(왼쪽)과 영광정(오른쪽). 고구려 평양성은 동쪽을 흐르는 대동강을 자연해자로 삼아 외성이 둘러치고, 그 속에 중성, 내성이 있었다. 대동문은 평양성 외성의 동문에 해당한다. 이날은 시계가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강건너 편을 바라보는 데는 비교적 괜찮았다. ▼ 평양성의 장대 중 하나인 을밀대. 성벽 모서리 위에 세운 건물이란 것은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형적인 고구려식 성쌓기 수법으로 보수한 모습이다. 을밀대를 바라보면서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미술대학 학생들. 우리와 마주치기 전에는 자기들끼리 농담도 하면서 여유롭게 그리고 있다가, 우리를 보자 좀 엄숙하게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 북쪽에서는 '조선화'라고 ..
발해 상경용천부 이번 답사의 첫 일정은 발해의 상경(上京) 용천부(龍泉府)가 있던 흑룡강성 영안시(寧安市) 발해진(鎭)이었다. 2012년 6월 16일. 날씨는 썩 좋지 않았다. 구름이 많이 끼었고, 언제라도 비가 올 듯한 분위기에서 연길을 출발. 연길에서 돈화를 거쳐 고속도로를 부분적으로 이용하는 길도 있으나, 운전하시는 정선생님은 도문(圖門) 쪽으로 가서 왕청현(汪淸縣)을 지나 영안시로 들어가는 코스를 택했다. 시간은 비슷한데, 이 길이 구불길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짧다고... 덕분에 2시간 30분 가량 한적한 시골길 풍경들, 그리고 중국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임업구역들에 잘 가꾸어진 숲들을 한껏 감상하면서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영안시에 가까이 와서 발해진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과거 일본인들이 붙인..
발해 건국지 동모산 2012년 6월 16일. 연길에 숙소를 두고 움직이려니 돈화 쪽 유적을 둘러보는 일정이 조금 애매해진다. 원래는 17일에 돈화와 화룡을 함께 둘러보려고 했다가, 16일 상경 용천부였던 영안시(寧安市) 발해진(渤海鎭)을 돌아보고 시간이 조금 남는 듯하여 돈화를 함께 보았다. 운전하신 정선생님께서 꽤 고생하신 날. 우리가 답사하는 기간은, 연길을 중심으로 그 일대가 3주째 흐리고 간간히 비가 내리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우리 답사 내내 그랬다. 발해진에서 돈화까지 오는 길에서는 가끔 굵은 빗줄기를 꽤 오래 만나기도 했다. 돈화시내에서 을 잠시 보고, 다시 차를 몰아서 동모산으로 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고, 날도 약간 어두어지는 중이라서 큰 욕심은 내지 않고, 멀리서 원경 사진이라도 담고 가자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