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히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은 사십년 뜨거운 피 엉킨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윤용하 곡)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이 가사를 문장으로만 읽어도 자연스레 곡조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지만, 가사를 지은이가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1893~1950) 선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중국으로 가서 청도, 환인, 상해에서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활동하다가 돌아와서 1922년부터 연희전문 교수로 조선의 문학과 역사를 가르쳤다. 위의 광복절 가사 1절만 보더라도 식민지 하를 살면서 광복을 염원하던 심정이 절절이 드러나지 않는가.
선생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끌려가던 중 평양 근교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세상을 뜬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돌아가신 날조차 정확이 알려지지 않다가, 남북교류가 활성화될 때 평양근교에 모셔놓은 묘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05년 7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공식일정에 없던 곳을 어렵사리 부탁하여 재북인사묘역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에 위당의 묘소가 있는데, 묘비를 통해서 위당의 사망 일자가 1950년 9월 7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때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다."여기에 실제로 유해가 묻혀 있느냐?"
그랬더니 "조금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경우에는 모두 유해를 수습하여 이곳에 모았다"고 했다. 이곳에는 이광수의 묘비도 함께 있는데, 90년대 초에 김정일의 지시로 흩어져 있던 유해를 모아서 묘역을 꾸몄다고 한다.
북한에는 3종류의 국가 관리 묘지가 있다. 하나는 대성산성 아래에 있는 혁명열사릉이다. 항일무장투쟁 종사자를 비롯하여 최고의 유공자들 묘역이다. 그러나 여기는 남한 당국에서 방북자가 방문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교육하는 곳이다.
두번째는 애국열사릉이다. 유명한 경제사학자 백남운이나 무용가 최승희도 여기 묻혀 있었다.
세번째가 위당이 묻힌 재북인사묘역인데, 이곳에는 주로 한국전쟁기에 납북되었다가 북한에서 사망한 분들을 모셔놓았다.
광복절 노래가사 이야기를 하다가 위당 정인보 선생의 묘소까지 이야기가 번졌는데. 하나 덧붙이자면,
많은 사람들은 위당이 삼일절 노래가사도 지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기미년 3월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先烈)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박태현 곡)
이 가사도 들으면 자동으로 곡조 지원이 될 것이다.
이 뿐아니라, 위당은 개천절, 제헌절 등 4대 국경일의 노래가사를 모두 지었다. 가만히 가사를 음미해보면,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마음 깊이 저항하고 몸으로 실천하며 민족해방을 꿈꾸었던 간절한 염원, 그리고 새 나라를 만들어가려는 희망과 사명감이 절절이 묻어나는 내용들이다.
광복절을 맞아 새삼스런 기억을 적는다.
지금 이런 나라 꼴을 보려고 그토록 간절하게 광복을 염원했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 날.
* 지금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는 13년 말까지 위당 정인보 선생의 유품을 모아 행적과 함께 설명하는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다. 새삼 위당이 어떤 분인가 알고 싶다면 가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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