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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삶

환국(桓國)은 없다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삼국유사』파른본의 영인(影印)에 교감(校勘)을 한권에 담은 책을 냈다.

  『삼국유사』파른본은 조선 초기 판본이다. 지금까지 학계에서 널리 이용하던, 중종 연간에 인쇄된 임신본보다 100년 가량 앞서 인쇄된 것인데, 지금까지 몇 종류가 알려져 있었지만, 가장 많은 분량으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삼국유사』파른본은 왕력, 기이1, 기이2까지이며, 이는 전체 『삼국유사』의 전반부 절반에 해당한다.  고 손보기 교수가 소장하던 것을 유족들이 연세대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2015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삼국유사』파른본을 통해 여러 이체자(異體字)들을 살펴볼 수 있다. 또 파른본은 임신본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내용을 더러 포함하고 있어 일찍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삼국유사』파른본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고조선조이다.

  단군신화를 담은 서술에서 유사역사 쪽에서 널리 주장하던 환국(桓國)에 관해서이다. 임신본에는 아래 그림과 같은 글꼴로 새겨져 있다. 그런데 파른본에서는 口 속의 글자가 士 또는 土에 가까운 글꼴로 나온다.

 

  임신본에서도 일연이 "옛날에 환인이 있었다"고 하고, 환인 뒤에 "환인은 제석을 말한다 (帝釋也)"고 분명히 밝혀놓았다.

  그러나 유사역사 주장자들은 일찍부터 이것을 환국이라 우기며, 고조선 이전에 환국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널리 퍼뜨렸다. 桓國, 檀國 등의 만들어낸 나라이름을 내세우며, 고대 동방의 대제국 운운하였다.

  심지어 환국은 기원전 7천년 전에 한반도와 중국대륙, 티벳까지에 걸친 대제국이었다고 한다. 『삼국지』동이전의 삼한 소국(小國)들 몇 개의 이름들을 살짝 바꿔서는, 이런 나라들이 환국을 구성하고 있었다고까지 우긴다. 황당한 일이다.

 

 

  파른본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을 때도 유사역사 쪽의 각종 인터넷 주장 속에서, 위의 왼쪽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파른본의 桓因을 國이라 우겼다. 무지의 소산이다.

  大 자를 흘려서 쓰다보면 여러 글꼴로 오해할 만한 모습이 된다. 위의 세번째 사진을 보자. 중국 금석문에서 大 자가 쓰인 모습이다. 파른본의 口 속에 들어 있는 글자가 바로 이런 모습이다. 게다가 고려대장경에서도 因 자가 이렇게 판각된 경우가 확인된다. 위 사진의 가장 오른쪽이다.

  五體字典의 오른쪽 글꼴로 쓰인 大 자를. 각수(刻手)가 파낼 때, 곡선으로 세밀하게 판각(板刻)하지 못하고 직선으로 처리한 결과가 파른본, 그리고 고려대장경의 因 자이다.

  서체를 이해하는 사람, 금석문이나 목판본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금방 이런 점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임신본에서는 왜 이런 글꼴이 나왔는가?

  파른본 계통의 책자를 재활용하여 판각한 것이 임신본이었다. 책자를 해체하여 목판에 뒤집어붙인 뒤에 새겼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 처음 찍어낼 때 종이가 살짝 들떠서 가로획 하나가 둘로 찍혀나올 수 있다.

  이것을 오해한 각수(刻手)가 三으로 새길 수도 있다. 五體字典에 나오듯이 쓰인 大의 글꼴이 엉성하게 찍힌 것을, 다시 나무에 붙여 판각할 때. 각수가 잘 못 파낸 글꼴이 임신본의 글꼴이다.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나와도, 유사역사 쪽에서는 망무가내일 것으로 짐작한다. 거의 신앙에 가깝게 '환상의 고대사'를 믿는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는다.

  역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종종 말과 감정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2월 17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린 고대사학회 발표장에서도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걱정스런 일이다.

  역사는 판타지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몰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