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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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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봉선리, 백제 최대규모 '목곽고' 발굴 충남 서천 봉선리 유적. 예전에 발굴 중간보고를 소개한 적이 있다. [ 백제 천제단 유적 첫 발견 ] 이번에 큰 규모의 목곽고(木槨庫)가 발굴되는 중인 듯. 연합뉴스 기사 (연합, 16. 8. 17) 추가 : 제사유적으로 결론짓고 발굴설명회 (연합, 18. 7. 13.)
익산서 백제 왕경 도로 찾았다 어쩐 일로 문화재청에서 보도자료를 내기도 전에 동아일보에서 '단독'이라고 소식을 알림. 익산 왕궁리 유적은 일찍부터 발굴이 진행되면서 틈틈이 중요한 발굴성과가 보고되고 있는 곳. 동아일보 기사는 아래 링크. (동아, 16. 8. 12.)
부여 석성산성 저수시설 발굴 부여 석성산성에서 저수시설이 발굴된 모양이다. 물이 넘칠 때는 한 곳으로 흘러나갈 수 있도록 배수로를 만든 흔적이 함께 확인된 모양. 발굴은 부여군청에서 (연합, 16. 7. 15.) 좀 더 자세한 사진은 연합에 실린 이 모습이 참고된다.
익산 제석사지 출토 악귀상 아래는 2016. 7. 12. 문화재청 보도자료 익산 제석사 폐기유적에서 동아시아 문화교류를 살필 수 있는 악귀상(惡鬼像) 등 출토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배병선)는 익산 제석사지(사적 제405호) 폐기유적 발굴조사 현장과 출토유물을 오는 13일 오후 2시 공개한다. * 발굴현장: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 28-4 일대 제석사(帝釋寺)는 백제 무왕이 도읍을 익산으로 옮길 계획을 추진하면서 왕궁 부근에 창건한 절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서 정관(貞觀, 중국 당 태종 연호) 13년(기원 후 639년) 벼락으로 인하여 불당(佛堂)과 칠층탑(七級浮圖), 회랑과 승방(廊房)이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있어 7층 목탑, 불당, 회랑(回廊), 승방 등을 갖춘 왕실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몽골 알타이 고분에 한국 고총고분 축조 기법 확인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몽골 발굴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고고학 발굴 결과를 해석하는 데는 여러 견해가 있기 마련인데, 문화재연구소는 고대 한국의 돌무지 무덤을 몽골 방면의 유적과 관련지으려는 경향이 있는 듯. 일단 현재의 발굴결과를 보도자료를 통해 내보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몽골 알타이 파지릭 고분 발굴조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맹식)는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학고고학연구소(소장 S.촐로온)와 공동으로 몽골 알타이의 파지릭 고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 파지릭 고분: 파지릭 문화기에 돌을 사용하여 만든 무덤. 파지릭 문화는 유목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스키토-시베리아 유형 문화의 하나로서 기원전 5∼3세기를 중심연대로 하며, 주로 몽골과..
인천 문학산서 통일신라 제의유적 발견 사진은 인천 남구청에서 연합에 제공한 것. 아직 구체적인 보도자료가 나오지 않은 듯. (연합, 16. 7. 5.)
황룡사 남쪽 우물서 청동접시 출토,촌주(村主) 실명 - 문화재청 보도자료(16. 6. 16.) - 경주 황룡사 남쪽 우물서 청동접시 출토,촌주(村主) 실명 기재 첫 사례 - 고대도로 등 도시시설 함께 확인 / 6월 17일 발굴현장 설명회 개최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조사 중인 경주 황룡사 남쪽담장 외곽 정비사업 부지에서 ‘달온심촌주(達溫心村主)’라는 촌주(村主) 이름이 새겨진 청동접시가 출토되었다. 또한, 신라 시대 도로, 배수로 등의 도시시설과 황룡사의 대지 축조방법을 알 수 있는 자료도 확인되었다. * 촌주(村主): 지방민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지방의 유력자에게 부여한 신라의 말단 행정관직 황룡사는 553년(진흥왕 14) 창건된 신라 최대 규모의 사찰로, 신라왕경 핵심권역에 해당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통..
1천5백년 전 신라시대 여성얼굴 복원 (연합, 16. 6. 8.) (KBS, 16. 6. 9) 복원 연구를 주도한 서울대 신동훈 교수를 중앙일보가 인터뷰한 기사가 재미 있다. 함께 소개. (중앙, 16. 6. 18) [출처: 중앙일보] [박정호의 사람 풍경] 미라·인골에 빠진 신동훈 서울대 의대 교수 “뼈는 과거 엿보는 타임머신…유골 200분 넘게 모셨죠” 이 인골은 2013년 경주 천원마을 발굴 당시에 제법 온전한 상태로 출토된 것인데. 당시 문화재청의 보도자료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