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굴소식

(146)
함안서 아라가야 최후의 왕묘 추정 고분 발굴 발굴소식은 늘 흥미롭다. (연합, 15. 4. 13.)
신라 귀족여성 무덤에 순장된 남성 경주에서 주목할 만한 발굴이 있는 듯. 오늘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 중간 발표한 모양인데, 문화재청 보도자료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음. 첨부파일은 보도자료에 붙은 사진파일 - 경주 황남동 신라 무덤에서 남녀 인골, 금귀걸이, 은허리띠 등 출토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지원을 받아 신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최영기)이 실시한 경주시 황남동 일원 소규모 국비지원 발굴조사에서 20~30대로 추정되는 남⋅여 인골(人骨)과 무덤 주인을 위한 금⋅은 장신구, 말갖춤(馬具) 등의 신라 시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인골은 1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2개체가 겹쳐진 형태로 출토되었는데, 주 피장자(被葬者, 무덤에 묻힌 사람)로 보이는 아래쪽의 인골은 똑바로 누운 상태로, 허벅지 뼈가 얇고 두개골의 귓바퀴 뒤쪽 뼈 형태가 여성적 ..
마도선, 수중발굴 전문가 신안 마도선은 고려시대 전공자에게나, 고대사 전공자에게나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수중 유물 발굴에 종사하는 전문가를 소개한 내용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기사. (한겨레, 15. 3. 20.)
신라 천년의 궁성, 마지막 흔적을 엿보다 경주 월성 시굴조사의 중간 결과인 듯. 앞으로 본격 발굴에 들어가면 매우 흥미로운 모습들이 속속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연구소의 보도자료(15. 3.18.)를 소개함. - 경주 월성 본격 발굴조사로 전환 -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지난해 12월 12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조사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慶州 月城, 이하 월성)’ 중앙지역(57,000㎡)의 시굴조사 성과를 공개한다. 이번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실시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조사지역에서..
담양 서옥고분군 매우 흥미로운 발굴 소식이다. (연합, 15. 2. 26.) 주인공의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이 없이 철제대도만 넣은 무덤. 그러나 무덤의 규모는 직경 13m가 될 정도로 제법 대형이고. 자유롭게 상상해본다면, 무덤 주인공이 전쟁에 출전했다가 패전하면서, 적군에게 시신을 탈취당했거나, 시신을 찾지 못한 상태로 나머지 병사들이 돌아와서 죽음을 전했다면? 이런 상상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고대인들은 전투를 치르다가 전사자가 생기면, 특히 귀족의 경우에는 시신을 수습하여 돌아가는 것이 관례였고. 때로는 적군이 목을 베어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음.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도 대야성이 함락되면서 죽임을 당했다가 시신을 백제군이 가져갔었다. 나중에 김유신이..
벽골제 보축제방서 초낭 발굴 문화재청 보도자료(15. 2.12.)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재)전북문화재연구원(이사장 최완규)에서 진행 중인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 발굴조사와 관련한 현장설명회와 자문위원회가 오는 13일 오전 10시 30분 발굴현장에서 개최된다. * 발굴현장: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282 일원 우리나라 최고(最古)․최대(最大) 수리시설로 알려진 김제 벽골제는 2012년부터 연차적으로 발굴조사 중에 있으며, 올해 조사는 당초 직선 형태였던 제방이 일제 강점기에 곡선 형태로 변경되어 하부구조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용골마을 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제방 동쪽 부분에서 보축 제방(補築 堤防,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변에 설치한 보강 시설)이 확인되었다. 특..
충주 호암동, 세형동검, 잔줄무늬거울 등 다량 출토 --- 아래 문화재청 보도자료(15. 1. 19.) 및 첨부사진 ---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구석기 유물포함층을 비롯하여 초기 철기시대와 통일신라∼조선 시대 무덤, 숯가마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초기 철기시대 무덤은 돌무지나무널무덤(積石木棺墓) 1기와 나무널무덤(木棺墓) 2기 등 총 3기로, 그 중 돌무지나무널무덤은 상․하 2단으로 굴착하여 묘광(墓壙, 관을 넣기 위해 판 구덩이)을 만들었으며, 하단의 묘광에는 통나무관을 놓고 묘광 상부까지 강돌[川石]로 내부를 완전히 채웠다. ※ 돌무지나무널무덤(積石木棺墓): 지하에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나무관을 놓은 후 그 위를 돌로 채운 무덤 양식 아울러 돌무지나무널무덤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 7점, 청동 잔줄무늬거울(..
성산산성 출토 목간은 산성과 무관 나는 목간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적이 없다. 주위에서 다들 목간을 이용하여 이런저런 논의들을 할 때, 검토할 시간을 미루어두고 있었다고 할까... 게으른 탓도 있고. 여러 가지 미심쩍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두세 개의 목간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내용이 분명한 경우에 한정했었다. 그런데 오늘, 가장 많은 목간이 나온 함안 성산산성에 대해 새로운 검토결과가 나온 듯. 직접 발굴을 관장하는 가야문화재연구소 소장의 언급이니 더욱 파격적일 수밖에 없고. 이런 용기는 사실을 엄격하게 다루려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니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그의 결론이 썩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흥미로운 발표내용임. < “성산산성 출토 목간은 산성과 무관…쓰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