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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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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나들목’ 일대서 35m 성벽 발견 올림픽대로 '풍납토성나들목'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풍납토성의 서쪽 성벽 아랫쪽이 발굴을 통해 드러났다. 연합 등 다른 언론에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경향신문이 먼저 보도한 듯. (경향, 18. 10. 9) 이곳은 삼표레미콘이 자리잡은 장소와 가까운데. 그동안 삼표레미콘이 풍납토성 복원을 위해 이전한다 안한다... 며 소송을 걸었던 곳이기도 하다. 성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초심에서는 재판부가 삼표레미콘 손을 들어주었고, 재심에서는 삼표가 패했다. 학계에서도 이전과 복원을 위해 재판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성벽 아랫부분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된 만큼, 현재 남아 있는 성벽과 이번 확인된 성벽을 이으면 삼표레미..
장수 삼고리 고분군, 가야 유물(1, 2차 발굴) 전북 장수는 대가야 계통의 유물들이 출토되는 고분이 많다. 왜 이곳이 백제의 영향 하에 들어가지 않고 고령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 영향을 받고 있었을까? 일찍부터 학계는 일본서기의 기록 등을 분석하면서, 낙동강 하류가 신라에 의해 막히면서 대가야가 해상 교역로를 확보하려고 섬진강 유역으로 진출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런 해석은 지금도 유용하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교역로로 이어지는 루트를 이용한 것인가, 아니면 대가야가 섬진강 유역을 영토로 지배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대가야의 영향을 받는 현지 토착세력들이 존재했던 흔적인가... 등등은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이번(2018년)에 장수에서 다시 중요한 유물이 출토된 모양이다. 아직 문화재청 보도자료는 올라오지 않았고, 연합 기사만 나왔다. < 장수 삼고리 고..
中서 4300년 된 고대 도시 발견…대규모 인신공양 만연 중국에서 발굴된 고대 인간의 거주지가 상당히 대규모인 듯. 발굴 결과를 해석하는데는 언론기사만 갖고서는 위험하지만. 일단 사진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사레임이 분명해보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18. 8. 27)
옥천에서 신라시대 산상 군사도로 첫 발견 옥천이라면 신라 관산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고. 유명한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이 죽임을 당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옥천에서 산 언덕 위를 지나가는 도로가 발견된 모양인데, 수레자국이 확인된 듯. 아래는 문화재청 보도자료. 충북 옥천에서 7세기 신라 관도(官道) 추정 도로 확인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의 허가를 받아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준식)이 작년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조사 중인 옥천 제2의료기기 산업단지 부지 내 유적에서 7세기 신라 고대 도로가 확인되었다. * 발굴 현장: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431번지 일원 이번에 확인된 도로는 남동-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며 산 정상부근 사면과 계곡부를 이어 조성된 것으로, 길이는 약 320m가 넘는다. 노면 폭은 약 5.6m에 달하고, 도로의 표면..
부여 화지산, 백제 최고급 건물 터 발굴 부여 궁남지 동쪽의 야트막한 산이 화지산이다. 이 산자락은 백제 유적이 있는 곳으로 이미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건물터가 발굴된 모양이다. 한겨레 단독으로 소식이 알려졌는데, 아래 링크. (한겨레, 18. 8. 16)
경주 성건동, 신라 대형창고, 술도가? 꽤 흥미로운 발굴소식이 경주에서 또 하나 전해졌다. 정확한 발굴지는 성건동 500-18이라고. 성건동에서 8세기 신라의 대형 창고가 발굴된 모양이다. 아래는 경주신문에 실린 사진. 아직 문화재청 보도자료로는 나오지 않았는데, 관련 언론 보도만 보아도 무척 흥미로운 소식이라서 급히 갈무리해둠. (경주신문, 18. 7. 26.) (연합, 18. 7. 26.) (연합, 18. 7. 26.) (매일신문, 18. 7. 26.) 추가로 이런저런 논의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연합. 이곳이 술도가일..
아차산성, 구리거울·철제마 출토 아차산성 발굴이 진행중인 듯. 문화재청 보도자료에 나오지 않길래 놓칠 뻔했는데, 몇 언론에 난 것으로 갈무리해둠. (광진구 제공 사진) 언론 기사를 갈무리해두는 것이 도움이 될 듯. (연합, 18. 7. 11) 동영상이 있는 것도 도움이 될 듯. (T브로드, 18. 7. 11)
부여 능산리 고분군, 100여 년 만에 재조사 완료 경주도 그렇고, 익산, 부여도 일제강점기에 도굴에 가깝게 파헤쳐진 고분들을 재발굴하는데 꽤 신경을 쓰고 있다. 발굴이란 것이 원래 본래의 유적을 파괴한다는 측면을 피할 수 없는 만큼. 발굴 자체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학문적 주장이 늘 있어왔고. 그래서 이런 재발굴은 나름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부여 능산리 고분의 일부가 재발굴 완료된 모양이다. 일본인들이 한 번 발굴했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는 유물도 있고, 고분의 구조도 새로 살필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래는 문화재청 보도자료. - 일제강점기(1917년) 이후 재조사, 왕릉급 무덤 4기와 건물지 등 확인 -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부여군(군수 박정현)과 함께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으로 추진한 부여 능산리 고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