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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곽/고대

경주 관문성과 명문석

  2011년 5월 21일.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번 둘러본 성이다.

 

  경주와 울산 사이, 모화(毛火)라는 곳이 있고 모벌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에는 통일신라 때 울산쪽에서 들어오는 왜구를 막기 위해 12km에 달하는 장성을 쌓았다. 그리고 그 동쪽 끝의 산꼭대기에 테뵈식 산성을 쌓았다.

  이곳에 올라서면 동해가 멀리 보인다.

 

  이 성이 중요한 것은, 성벽 둘레를 돌아가며 성돌에다 축성집단이 군(郡)별로 책임공사 구간이었음을 새겨놓은 글자들이 있다는 것. 모두 10개가 발견되어 보고되었다. 최초 보고는 박방룡 선생이 했고, 나도 이 명문들을 활용하여 1편의 논문을 써서 발표한 적이 있다.

 

  내가 1990년대 초에 처음 갔을 때는 산 꼭대기에 목장이 있었고, 포장 안된 길을 오래 걸어올랐었다.

  그러나 그 뒤에 가보니 번듯하게 포장되고, 또 목장 자리에 골프장과 리조트가 들어서 있었다.

  리조트 입구에서 살짝 산길을 걸으면 금방 성벽이 나온다. 바로 이런 모습이다.

 

 

  윗쪽에 잡석처럼 쌓은 것은, 아마 임진왜란 때인가(?) 후대인들이 임시로 보강한 흔적으로 생각된다.

  번듯하게 쌓은 아래쪽이 원래의 성벽이다. 네모나게 제법 잘 다듬어 쌓은 것으로 보아 통일 신라 이후이다. 12km 장성이 8세기 전반에 쌓은 것이니, 이 테뫼식 산성도 그쯤 쌓은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어쩌면 그보다 좀 일찍 쌓았을 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성의 축조방법을 보면 아래쪽이 이렇게 뒤로 물려쌓기를 했다는 것. 이런 방식은 고구려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인데, 바로 이곳 관문성과 경기도 광주 이성산성 등에서도 보인다.

  퇴물림쌓기라고 부르는데, 위 사진에서 뚜렷하지 않은가?

  더구나, 여기서 사진으로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관문성 성벽에는 윗돌이 삐져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랫돌에 턱을 다듬어 놓은 곳까지 보인다. 마치 장군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언젠가 고구려사 전공하는 임기환 선생과 답사 왔을 때, "통일 후에 고구려 성곽 축조 기술자를 투입한 흔적이 아닐까요?" 했던 기억. 농담같은 이야기이지만, 완전 농담이 아니라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성의 성돌 바깥에는 명문(銘文)이 있다. 어느 고을에서 얼마의 길이로 축성책임을 맡았다는 내용이다. 모두 10개가 알려지는데, 일찍이 경주박물관에 근무하던 박방룡 선생이 10여 차례의 답사와 조사를 통해 소개한 것들이다.

  그러나 정작 답사를 가서 보면 박선생님이 이미 찾아놓은 것들을 확인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후에 다시 성벽이 무너진 곳도 있고,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도 있다. 나도 재조사를 위해 여러 번 성벽 바깥을 훑어내린 적이 있다. 이 때 이 명문들을 자료로 이용할 수 있게 찾아놓은 분의 노력과 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성곽 답사에는 늦은 때가 되었다. 숲은 우거지고, 성벽을 보려면 무성한 나뭇가지를 헤쳐야 한다. 그래서 동행한 학부생들 몇에게 보여줄 겸, 몇 개의 명문석만 기억을 더듬어서 찾아보았다.

  그러는 중에도 뱀을 3번이나 만났다. 성곽이 있는 곳에는 유독 뱀이 많다. 틈새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위의 명문석에서 왼쪽편이 [골고남계(骨南界).....]라고 표시된 내용이다.

 

 

  이 명문은 한 번 가본 사람이 아니면 쉽게 찾지 못한다. 제일 바닥 쪽에 있기 때문에 항상 수북한 낙엽에 덮혀 있다.

  낙엽을 다 걷어내면 이런 글자가 나온다.

  [금경원천모주작(金京元千毛主作) ~~] 여기서 '금경원천모주'가 무엇인가? 이게 문제인데, 나는 식읍주(食邑主)로 추정하는 글을 썼었다.(2003「新羅統一期의 貴族私領과 郡縣制 -關門城 築城時의 方役編成 事例 分析-」『東方學志』122)

 

  가끔 한 번씩 가볼 때마다 성벽이 군데군데 새로 무너지고, 앞쪽에는 리조트 주차장도 들어서고... 답사하기는 편해졌는데, 어쩌면 조만간 성벽 있는 곳까지 뭔가가 들어서지나 않을까?

 

* 내 싸이 블로그의 글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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