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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와 협잡의 9일 기가 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이다. 지난 수년간 국정원의 상습적 선거개입이 자행되어 왔고 - 이 모든 수괴는 바로 이명박이란 자이다. 검찰 수사가 부실하여 국정조사를 논의하기 시작하니, 새누리당에서는 느닺없이 노무현의 'NLL 발언'이라는 걸 다시 들고 나왔다. 간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 (한겨레, 13. 6. 24.)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울릉도 남서고분군 2012년 4월 24일. 울릉도에 온 이튿날이다. 오전에 독도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온 시간이 좀 늦었다. 도동항에 도착한 것이 5시 넘어서였다. 해가 늦게 질 것이고, 남서고분이 있는 곳이 울릉도 서쪽이므로 좀 늦은 시간에 가도해가 남아 있으려니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서면 남서동에 도착한 때가 오후 6시 무렵. 생각을 조금 잘 못했었다. 좁은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서, 하늘은 아직 훤한데, 골짜기는 벌써 해가 떨어져서 어두워지기 시작했었다. 그래도 부지런히 걷기 시작. 울릉도 서면 남서동. 서면에는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에 작고 조용한 중학교도 있다. 작은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좁은 골짜기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좌우의 풍경은 육지에서 흔히 보는 모습과 다르다. 울릉도만의 특징을 갖고..
울릉도 태하 해변 2012년 4월 23일. 앞과 마찬가지로 울릉도에 도착한 날 오후. 현포 고분을 보고, 아직 햇살이 많이 남아 있어서 "경치 좋다"는 태하 해변을 돌아보고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현포에서 버스를 타고 잠깐 가면 태하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보이는 성하신당(聖霞神堂). 바닷가에 흔히 보이는 신당이지만, 여기에는 특별한 유래가 있다고 한다. 안무사 김인우 등은 실제 기록상에 나오는 인물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울릉도에 사는 주민이 있으면 되도록 육지에 나와 살도록 권하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조정에서 파견한 사람이 김인우이다. 그러나 여기 적혀 있는 이야기는 그냥 현지에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에 별로 신빙성을 두지 않는 체질이다. ..
울릉도 현포고분군 2012년 4월 23일. 울릉도에 도착한 날 오후. 천부에서 나리분지로 가는 버스를 놓치고, 신라 고분군이 있는 현포로 가기로 했다. 우리가 타고온 버스가 되돌아 출발하는 시간까지 30~40분 가량을 천부항 부근을 어슬렁거렸다. 천부항 부근의 풍경이다. 울릉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만난다. 한국의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산과 골짜기. 오른쪽 멀리 보이는 산 봉우리 아래에 뻥 뚫린 곳은, 카메라 센스의 먼지가 아니라 실제로 뚫린 곳이다. 천부는 작은 마을이다. 항구 가까이에는 집도 별로 많지 않고.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 조그만 마을에 교회가 무려 4개 있다는 것. 역시 한국 개신교의 위력은 대단하다. 천부는 19세기 말부터 일본인들이 울릉도 원시림을 베어나르던 중요한 항구였었다. 울릉도의..
울릉도 여행 2012년 4월 23일(월). 작년에 가려다가 예약까지 해놓고서는 하루 전에 "풍랑 때문에 출항 못한다"는 문자를 받고 그만두었던 울릉도 답사. 이번에도 중간시험 기간을 이용해서 대학원생 몇명과 결행을 했다. 풍랑이 있어서 어떨까.... 했는데, 다행히 다른 연락이 없어서 출발. 서울에서는 여행사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묵호항으로 가야 한다. 새벽 3:30분에 대한문 앞에서 승차하여, 줄곧 자면서 묵호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고 항구에 도착. 처음 와본 묵호항. 묵호 - 울릉도 - 독도 배편은 2종류가 오간다. 우리가 탄 호. 이것말고도 가 있는데, 승선인원은 둘다 400명으로 비슷하지만 는 조금 작다. 800명 승선에 차량 50대를 싣는 더 큰 배가 취항준비중이라고, 우리도 혹시 그 배를 타지 않을까.. ..
철원 도피안사 비로자나불 2013년 2월 14일. 신라말기에 선종이 유행할 때 함께 만드는 경향이 있었던 비로자나불. 특히 철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은 전남 장흥 보림사 철불, 그리고 강원 철원 도피안사 철불.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은 지금 거처를 옮겼다. 비로전을 허물고 새로 짓는 중인데, 그 바람에 비로자나불을 요사채 곁의 작은 가건물로 옮겨 모셨다. 예전에는 불단이 대좌를 덮고 있어서 다 볼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이제는 불상과 대좌 모두를 볼 수 있다.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은 손상된 나발이 몇 개 안될 정도로 보기 드물게 온전한 불상이다. 조각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것이고, 신라 말 지방사회의 신앙결사인 향도조직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명문이 등 뒤에 돋을새김되어 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865년(..
보림사, 실상사의 철불 부근을 지날 길이면 반드시 들러는 장흥 보림사. 2013년 1월 14일에 들런 보림사. 비로자나철불. 연도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사례이다. 9세기 중반 헌안왕 때 만든 것이다. 불상 왼쪽 어깨에 명문이 있다. 이 불상은 원래 상태가 나쁜 금도금이 되어 있다가, 문화재청의 보존처리로 금박을 벗겨내고 원래의 철불 모습에 가깝게 되돌린 것이다. 이때 철원 도피안사 비로자나불도 금박을 벗었다. 아래는 남원 실상사의 철제 여래좌상. 연대를 정확히 알 수없어서 대개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한다. 그러나 시기가 조금 더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절 한켠의 발굴중인 장소에 설치한 가건물에 임시로 모셔져 있는 상태.
경주 굴불사지 십일면육비 관음 관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듣고 보살피는 존재이다. 불교에서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듣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본다(觀)'라고 표현한다. 역설적이고 멋진 표현이다. 그래서 관음상은 석굴암에서 보듯이 머리 위에 쓴 관에 여러 개의 얼굴을 뵤사하거나, 팔을 여럿 달아서 형상화하기도 한다. 석굴암 관음은 11면(面) 관음상이다. 팔은 2개 밖에 없다. 불국사 관음전에 가면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음을 볼 수 있다. 최근에 만든 것인데 무수한 눈과 손을 형상화해놓았다. 중생의 고통을 어루만지려면 그만큼 많이 보고 바삐 움직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것인데, 머리에 쓴 관에 11개의 얼굴을 조각하고, 팔이 6개로 조각된 사례가 있다. 경주 굴불사 사방불의 동북쪽 면에 선각(線刻)해 놓은 십일면육비(十一面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