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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관문성과 명문석 2011년 5월 21일.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번 둘러본 성이다. 경주와 울산 사이, 모화(毛火)라는 곳이 있고 모벌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에는 통일신라 때 울산쪽에서 들어오는 왜구를 막기 위해 12km에 달하는 장성을 쌓았다. 그리고 그 동쪽 끝의 산꼭대기에 테뵈식 산성을 쌓았다. 이곳에 올라서면 동해가 멀리 보인다. 이 성이 중요한 것은, 성벽 둘레를 돌아가며 성돌에다 축성집단이 군(郡)별로 책임공사 구간이었음을 새겨놓은 글자들이 있다는 것. 모두 10개가 발견되어 보고되었다. 최초 보고는 박방룡 선생이 했고, 나도 이 명문들을 활용하여 1편의 논문을 써서 발표한 적이 있다. 내가 1990년대 초에 처음 갔을 때는 산 꼭대기에 목장이 있었고, 포장 안된 길을 오래 걸어올랐었다. 그러나 그 뒤에 가보니 ..
거제도 옥산성 2011년 4월 1일. 예전에 찍은 사진이 있긴 했지만, 봄날에 새싹이 틀 때쯤의 색상이 좋아서, 시간 맞춰 간다고 마음먹고 들렀다. 거제도에는 성이 많다. 조선시대 수군의 진성(鎭城)들이 수두룩 하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왜성이 여러 곳이다. 그리고 고려 의종이 폐위된 뒤에 잠시 유폐되었던 폐왕성(廢王城 지금은 지명에 따라 이라 고쳐 부르며 발굴이 끝난 뒤에 정비를 좀 해두었다)이 있다. 옥산성은 옥산금성이라고도 한다. 산성의 바위에 '옥산금성'이라는 글자를 새긴 곳이 있다. 19세기 말에 쌓았다는 것이 특이하고, 낮은 동네 뒷산 꼭대기에 쌓아서 지금도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거제도의 옛 중심지였던 거제면에 있다. [다음 지도]를 잠시 빌려오면, 위치는 아래와 같다. 7시 방향에서..
영월 정양산성 영월 정양산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것이다. 예전에 일부에서는 고구려 성으로 생각하려는 경향도 있었으나, 지금은 신라 성으로 보는 것이 대세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현지에서는 '왕검성'으로도 불렀지만, 지금은 지명을 따서 정양산성이라 부른다. 이 근처에 고려시대에는 정양역이 있었다. 이곳이 오래된 교통로상에서 중요한 자리임을 가리킨다. 2009년 4월 13일. 전날 서울을 출발해서 밤늦게 영월읍내에서 하루를 묵다. 여러 번 찾아온 적이 있었지만, 겨울이나 초봄에만 답사했기에 풀빛이 조금 감도는 사진을 얻고 싶었고, 또 최근 어떤 블로그를 보니 영월군에서 유적정비한다고 성벽 주변을 벌채한 것같길래 궁금하기도 하고.... 시간을 만들어서 들렀다. 14일 아침을 영월역 앞에서 올갱이 해장국으로 먹고, 산..
발해 석등 2012년 6월 16일, 날씨가 흐렸다 갰다를 반복하던 날. 늘 사진에서만 보던 발해석등의 실제 모습을 보았다. 흑룡강성 영안시(寧安市) 발해진(勃海鎭), 즉 옛 발해 상경용천부(上京 龍泉府) 성 안에 있는 '흥륭사(興隆寺)'라는 절에 있다. 국사 교과서든 어디든 발해 석등으로 늘 소개되는 것. 어찌 사진을 좀 잘 찍어보려고 했지만, 뒷 건물 오른쪽에 공사중인 포크레인이 있어서... 정면에서는 이런 각도밖에는 안된다. ▼ 옆에서 찍은 것.
이건 정부도 아니고...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해 검찰수사가 시원찮아서 야당에서 국정조사를 하자니까, 간악한 무리들이 전혀 연관없는 노무현 NLL 발언을 들고 나오고. 조중동이 춤을 추고.... 이렇게 해서 결국은 시사문제가 그들의 프레임대로 말려들어가고... 급기야 국정원에서 남북정상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공개하기에 이르고... 이게 국가냐, 정부냐? 이제 어디가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며, 남북간의 협상은 또 어떻게 할 것이냐. 참, 비열한 자들. 정치적 기득권층의 간교한 술책들이 우매한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결국은 함께 망하는 꼴들을 보아야 하는 날들이 머지 않은 듯.
독도에서 30분을 머물다 2012년 4월 24일. 울릉도에서 거의 3시간 가량을 가야 독도에 닿는다. 바다 사정에 따라, 또 배 종류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좀 다른 듯. 도착한 시간이 거의 3시 반 가량 되었다. 오전에 울릉도를 떠난 배는 풍랑이 잦아들지 않아서, 배가 접안하지 못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는 운이 좋았대나...어쨌대나... 옆 자리 아주머니들이 떠드는 소리. 일반 관광객들을 잠시 독도에 내릴 수 있게 하면서, 선착장을 넓히고 접안시설도 잘 갖추어놓았다. 독도는 동도, 서도 2개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배에서 내리면 바로 동도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서도는 갈 수 없다. 경비대나 어민들만 필요할 때 작은 배로 이동하는 듯. 400여 명이 한꺼번에 내리니, 내리는데만도 10분이 넘게 걸리고..
울릉도 독도박물관 등 2012년 4월 24일. 울릉도에 온 둘쨋날. 오후에 독도를 둘러보기 전에, 독도박물관과 향토유물전시관을 둘러보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의 잘 지은 건물이 독도박물관이다. 삼성에서 지어준 것. 그리고 그 앞의 작은 건물이 향토유물전시관. 그리고 독도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 타는 곳이다. 이 사진은 케이블카 안에서 찍은 것. ▼ 독도박물관에 전시된 [신묘명각석] 1937년 바다에서 건져낸 것. 2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것밖에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1711년 삼척영장(三陟營將) 박석창이 울릉도 수토(搜土) 차 방문하여 새긴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선정부의 정책은 먼 섬에 사는 주민들을 가능하면 육지로 옮겨살게 하는 방침이었다. '수토'의 임무란 이런 일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어찌됐던 이런 기록들은 조..
울릉도의 신라 금동관편 2012년 4월 24일 오전. 오후에 독도가는 배를 타기로 되어 있어서, 오전에는 울릉도 향토유물전시관과 독도박물관을 돌아보고, 독도전망대까지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사실 울릉도 답사의 구실은 몇 군데 신라 고분을 살펴본다는 것도 있고, 더 중요한 것은 향토유물전시관에 있는 신라금동관 조각을 직접 확인해보려는 욕구가 가장 먼저였다. 그 다음이 좀 쉬며 걷고 경치 구경도 하자는 것이었고.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울릉도에는 신라 고분들이 있다. 적석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대부분 민가를 짓거나 농토를 만들면서 사라졌고, 그 내부의 유물들도 온전히 수습된 것이 없다. 다행히도 고분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나온 토기의 일부, 그리고 금속 유물의 파편들이 에 보관되어 있다. 현지에서 이런 유물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