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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답사기/풍경,유적

포항 오어사, 원효암

  2021년 7월 12일.

  경주에 계신 원로 선생님과 함께 포항 오어사에 갔다. 날은 무더웠지만, 오어사는 거의 15년만이라 새삼스런 기분으로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오어사(吾魚寺)는 원효가 동시대의 승려 혜공이 머물던 곳이다. 햬공과 원효에 관련된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석 혜공(釋惠空)은 천진공(天眞公) 집의 고용살이하는 노파의 아들로 어렸을 때의 이름은 우조(憂助)[대개 방언인 듯하다]이다. 공이 일찍이 종기로 거의 죽음에 임박하자 병문안하는 사람이 길을 메웠다. 우조는 나이 7살로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집에 무슨 일이 있어 손님이 많습니까?” 어머니가 말하기를 “주인이 심한 병이 나서 장차 돌아가시려 한다. 너는 어찌 몰랐느냐?”라고 하였다.우조가 “제가 도울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그 말을 이상하게 여겨 공에게 알렸다. 공이 불러오게 하니 좌상(坐床) 아래에 이르러 말 한 마디 없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종기가 터졌다. 공은 우연이라 생각하고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

  만년에 항사사(恒沙寺)[지금 영일현(迎日縣) 오어사(吾魚寺)이다. 민간에 이르기를 “항하사(恒河沙) 같은 많은 사람이 출세하였으므로 항사동(恒沙洞)이라 이름하였다”라고 한다]로 옮겨 머물렀다. 이때원효(元曉)가 여러 경소(經疏)를 찬술하고 있었는데 매양법사에게 와서 질의하거나 혹은 서로 농담을 하였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개울을 따르며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에 변을 보고 있었는데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희롱하여 말하기를 “너의 변은 내가 먹은 물고기[吾魚]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하여 오어사라 이름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를 원효의 말이라고 하나 잘못이다. 향속에 그 개울을 모의천(芼矣川)이라고 잘못 부른다. ... (『삼국유사』 제5 의해(義解) 이혜동진(二惠同塵)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번역을 가져왔음)

 

오어사 대웅전

  오어사에 도착했을 때는 누군가의 49재가 진행되고 있었다.

  더운 날이긴 했지만, 산길을 걸어 운제산 중턱에 있는 원효암까지 올라가 보았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은 처음이다. 작고 조용한 암자이다.

오어사 자장암

 

  다시 오어사로 내려와서는 오어사 동종을 비롯한 유물전시관을 보았다.

오어사 동종

 

 

  유리 진열실 안에 있는 것이라 빛반사 때문에 사진이 깔끔하지 못하다. 명문 부분의 사진.

  이 종은 1216년(고종3년, 貞祐四年)이라는 연도가 분명한 유물이다. 황수영 선생의 판독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괄호 속은 내가 사진으로 판독 교정한 글자)

 

  棟華寺都藍重大師淳誠與同寺       (藍 → 監이 아닐까 싶음, 포크레인 날에 긁힌 듯이 패인 부분)
  重大師睛蓮道人僧英▨與同發
  誠願共▨私貯兼集聚錫鑄成
  金鍾一口三百斤懸掛于吾魚          (一 → 壹)
  寺以此成善普願法界生亡共          (成 → 의심스런 글자)
  導善從者貞祐四年丙子五月十九日  (導普提者貞祐四年~~)
       大匠  順光 造 [『黃壽永全集4(금석유문)』, 1999]

 

  황수영 선생의 판독은 엄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다음 기회에 오어사를 찾는다면, 준비를 좀 해가야겠다.

 

  오어사 전시관에는 "원효의 삿갓"이라고 이야기하는 삿갓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원효의 것이라 믿을 수는 없지만, 소개해둔다.

 

오어사 '원효삿갓'